2015년 1월, 추운 겨울날이었다. 첫 해외 여행지였던 영국에서 조카 집에 돌아와 가족과 얘기하는 것 빼고 바깥에서 한국말로 얘기해본 적이 없었다. 입은 근질하지만 영어로 내 모든 의사를 표현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보니 한편에 답답함이 있었다.
영국으로 여행 오기 전에, 대학교 동기 둘이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난다고 들었고 마침 영국 여행의 일정도 있어서 시간 맞으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저 시간이 맞아지면 보면 되는 거고 아니라면 굳이..라는 생각이었으나 갑자기 꼭, 반드시 만나고 싶어 졌다. 그렇게 일정을 조율하여 시간을 내 런던에서 다 같이 만나게 되었다. 장소는 피커딜리 서커스 역과 코벤트 가든 사이쯤 되는 곳이었고, 친구들이 먼저 와있었기에 내가 찾아갔다. 코스타 커피집 앞쪽에서 친구 L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타이밍이 맞았는데 신호등을 사이로 두고 서로 서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여서 단번에 친구 L임을 알았다.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그 상황은 잊히지 않는다.
'○○이!'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며 크게 친구 L의 이름을 불렀다. 정말 크게 불렀다. 주위에 낯선 외국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자신감이 샘솟았나 보다. 반가움이 무엇보다 컸지만 한편으로는 바깥에서 큰 소리로 한국말을 내뱉지 못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마음이 나를 지배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렇게 친구 L을 만나서 친구 P가 기다리고 있는 카페로 갔다. 동네의 일반 카페 같은 느낌이었는데, 우리가 흔히 가는 프랜차이즈의 크고 깔끔한 카페는 아니지만 묘한 매력이 있었다. 게다가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이나 걸리는 유럽에서 다 같이 본 곳이어서 의미가 깊었다.
그다음 해인 2016년 7월, 다시 영국 여행을 오게 되었고 여느 때와 같이 런던 시내를 걸으면서 구경했다. 피커딜리 서커스 역에서부터 뮤지컬 극장이 즐비한 쪽으로 걷다가 갑자기 어디서 본 풍경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미제라블 극장 주위였는데 그 거리가 바로 2015년 1월, 친구를 만났던 곳이었던 것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그 순간이 떠오르며 그때 만났던 카페는 잘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가 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하게 내 발이 그곳을 알고 이끌어 줬다. 그렇게 사진을 찍어 친구 L에게 다 같이 만났던 카페를 찾았다며 사진을 보내줬다. 우리의 추억이 깃든 곳이라며 기쁨도 함께 전했다.
런던의 어느 카페
훗날 영국에서 찍은 풍경들 중에 그리면 좋을 사진을 찾는 중에 대학교 친구들과 만났던 카페를 찾았다. 사진만 봤는데도 앞서 얘기했던 '신호등에서 친구 이름을 크게 외쳤던 기억'이 자동응답기처럼 바로 떠올랐다. 그렇게 추억을 떠올리며 그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