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원을 그리고 중심을 기준으로 피자 조각을 내듯 시간 단위로 할 일들을 적었던 '방학생활 계획표'가 떠오를 것이다. 형형색색 예쁘게 꾸미기 위해 알록달록 색연필과 함께 할 일들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꿈나라라는 말은 꼭 들어가야 했고, 잠드는 시간에는 'Zzz '혹은 꿈나라로 가기 위한 '기차'를 그려 넣곤 했다. 그때부터였지 않았나 싶다. 무언가를 맞이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는 것 말이다. 우리는 모두 알게 모르게 초등학생 시절부터 계획이라는 것을 배우고 실행하고 경험해봤다.
'스터디 플래너'로 그날그날의 계획을 짜고 공부했던 고등학생 시절, 그때부터 '계획'이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스스로 생각해보고 적어보고 실행했다. 그렇게 공부 계획을 일 단위별, 주 단위, 월 단위로 짜 나갔다. 물론 계획대로 모든 것을 실행했다면 어떻게 또 바뀌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을까 한국에 있지 않았을까 괜스레 궁금하긴 하다.
그 당시에는 원하는 대학교, 학과를 가기를 위해 계획했던 것으로 말 그대로 '공부 계획'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미래를 꿈꾸는 계획이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주위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대학만 가면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어'라는 말이 공부를 하는, 해야 하는 내 상황에 작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대학교를 가기 위해 공부 계획을 짜고 이를 실행해 나가려 노력했다.
어느덧 대학생이 되고, 고등학생 시절에 일찍 일어나 등교하고 야자(야간 자율 학습)까지 끝나면 독서실 가서 공부하는 생활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어 정말 행복했다. 이렇게만 쭉 살고 싶었다. 대학교에서는 내가 듣고 싶은 과목을 들을 수 있고, 시간만 맞춘다면 시간표를 내 마음대로 짤 수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고등학생 3년간 보냈던 나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하고 싶어 편하게 다녔다. 그렇다고 성격상 학점을 모두 포기하진 않고 적당히 공부하고 놀 땐 놀고 그렇게 생활해 나갔다. 고등학생 때의 생활보다 백배, 천배, 만배 나았다.
대학생 중간고사, 기말고사 공부를 해가면서 별도 계획을 짜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모든 계획은 내 머릿속에 있었다. 대략적으로 이렇게 해서 준비하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공부해 나갔다. 어떻게 보면 더 이상 고등학생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느껴보고 싶어서였을까. 그렇게 보이고 싶어서였을까. 어린 마음에 계획이란 것은 학창 시절에나 하는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잠시 건방졌었다.
그렇게 '계획'이라는 것에 대해서 크게 생각해보지 않고 대학 초기 생활을 보냈고 1년의 대학교 생활을 끝내고 군대에 가게 되었다. 군대 얘기는 재미없기 때문에 바로 전역 직전인 병장 때의 일화만 간략히 언급하려 한다. 전역하기 한 달가량 전인 2014년 1월에 '전역병 미래 설계'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병장이고,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모두가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때 사뭇 진지하게 임했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되면 각종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졸업을 하면 바로 취업하고 돈을 열심히 벌어서 차도 사고 집도 사야지 하며 써나갔다.
이제야 '공부 계획'이 아닌 '인생 계획'을 글로 써보게 되었다.
20대에는 더 세분화해서 대학생 재학, 대학생 졸업 후로 나눠 구체적인 계획을 적었고 30대, 40대, 50대에는 전체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적었다. 최근에 책상을 정리하다가 A4용지에 마음을 담아 꼬박 썼던 인생 계획이 담긴 글을 봤다. 그러면서 다시 되돌아봤다. 이뤘는가. 이루고 있는 상황인가. 방향이 맞는가.
아직 30대가 되지 않아 20대만 돌아본다면 떳떳하게 모든 것을 해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방향은 맞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주관적 생각이다. 어떻게 사람이 생각했던 계획들을 모두 이룰 수 있는지 반문은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겠다.
6년 전에 썼다는 계획을 다시 봤지만 '써봤다'라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 나에게 각인이 되어있어서인지 계획했던 방향에 맞게끔 흘러가도록 사는 편이다. 그러면서 반성도 하고 또다시 마음을 잡는 계기가 되었다. A4용지에 담긴 미래 계획은 마치 타임캡슐에 넣어둔 소망을 훗날 보는 것 같이 묘한 즐거움을 줬다.
한 번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미래 계획을 짜 보고 서랍에 콕 묵혀둔 뒤, 몇 년 뒤에 보면 어떨까.
계획을 써본다는 것만으로도 본인이 원하는 것을 더 잘 알 수 있고 실행하게 해 줄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