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휴가로 멀리 떠나고 싶다. 아무런 걱정, 고민 없이 내려놓고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니 더욱 애가 탄다.
해외여행을 가면 나라 주변을 둘러보기 급급한 나머지 숙소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는 편이다. 밖의 주변 명소들을 둘러봐야 하므로 숙소에 오래 머무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숙소는 짐을 보관하고 잠을 자기 위한 곳이라 여겨 지친 마음과 몸을 회복한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국내에서 호캉스를 가지만 유럽까지 가서 호캉스 한다는 것은 크게 들어본 적이 없다. 호텔이나 기타 다른 숙소에만 있는다면 유럽이든 근처의 나라든 국내든 똑같기도 하고 멀리까지 가서 숙소 안에만 있는 건 상상조차 안 해봤을 것이다. 아파서 어쩔 수 없이 나가지 못하는 것은 다른 얘기지만.
작년 8월, 프랑스 파리 여행에서 2박 3일간 머물 때였다. 분명 호텔을 예약했는데 높지 않은 가격이어서 그런지 건물의 크기 자체는 작은 편이었다. 1층에 프런트와 대기하는 장소 그리고 위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 모두 알차게 오밀조밀 모여있었고 엘리베이터 정원은 5명이 채 안되어 보였다. 그래서 호텔이 별로였느냐 하면 당연히 아니다. 나만의 공간이어서 그런지 짐을 풀고 쉴 수 있는 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아쉬웠던 것은 숙소를 떠날 때 여태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본 것이다.
파리 숙소 창밖의 풍경 (2020. 03)
침대 앞에 바깥을 바라볼 수 있는 창가가 있었다. 떠나는 날 아침, 창문을 활짝 여니 새벽 아침 공기는 시원했고 정신이 절로 차려졌다. 분명히 전날 봤던 풍경이고 바깥에 에펠탑 같은 명소가 바로 보이는 것도, 일출과 어우러진 자연광경이 펼쳐진 것도 아니었다. 그냥 옆에 건물들, 쌀쌀한 듯 시원한 바람 그리고 드문 드문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움직이는 나무들. 흔할 수 있는 광경이었지만 왜 지금까지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는지는 모르겠다.
누릴 수 있음에도 누리지 못했고 뒤늦게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2박 3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숙소 내에서 바깥 풍경을 긴 시간 동안 바라보며 힐링하지 못했다. 에펠탑을 보러 가야 했고 오르세 미술관, 몽마르트르 언덕,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 등 파리의 유명 장소에만 집중하다 보니 숙소 내에서의 나 자신과 대화는 없었던 것 같다. 언제 올 수 있을지 몰라서 최대한 열심히 다녀보자 싶어 일어나면 씻고 조식을 먹은 뒤 곧바로 밖으로 나섰다.
지나고 나서야 떠날 때 되어서야 그 가치를 늦게 깨달았지만 이 경험도 나에게 큰 교훈이 되어주었다. 많이 보려고 돌아다니는 것이 여행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여행에 가서 쉬는 것은 물론이고 여행에 가서 머무는 것도 여행에 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가서 숨 쉬는 것 자체도 여행이라는 것.
다음에 어디로 떠날지 모르겠지만 그때 배웠던 소중함으로 후회 없는 여행을 해야지.
파리 숙소 창밖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