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펜으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가끔 다른 그림 도구를 사용해보고 싶어 지곤 한다. 그렇게 수채화도 해보고 색연필, 파스텔로도 그려봤고 캔버스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칠해보기도 했다.
그중에서 아크릴 물감으로 캔버스 위에 칠해본 것이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뭐랄까 물감 자체가 굳어져 표면이 울퉁불퉁함 속에서 오는 질감과 색채감이 좋았다. 무엇보다 강렬하고 진한 느낌이.
며칠 전 폰에 담긴 사진을 보다가 '새벽에 까를교 위에서 프라하성을 바라본 풍경 사진'을 봤다. 사진 속이 어떤 상황이 었는지 3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한데, 새벽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 겸 까를교로 나섰을 때였다. 전날 비가 와서 다리 위는 빗방울들을 머금고 있었고 가로등이 밝게 주위를 비출 때 불빛들이 아래 잔잔하게 담겨있었다. 마치 흐르는 강물 위에 반사된 것처럼.
프라하 까를교 위 새벽 풍경
사진을 본 순간 작년 8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봤던 고흐의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 떠올랐다. 고흐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이 그림이 나에게 제일 큰 감동으로 남아있는데, 강에 비치는 빛들을 잔잔하게 그리고 두터운 질감으로 표현해낸 것이 정말 아름답기 때문이다. 주위 어둠 속에서 별빛과 가로등 불빛이 주변을 은은하게 밝혀주어 조화로웠다. 어떻게 이렇게 그려낼 수 있지를 수십 번 되뇌었던 것 같다.
고흐의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 (1889)
고흐 작품이 떠올라 나만의 방법으로 까를교 위 새벽 풍경을 표현하고자 수채화 물감과 종이를 준비했다. 마음 같아서는 캔버스 위에 아크릴 물감이나 유화로 질감을 살려 담아보고 싶었지만, 그릴 당시에 아크릴 물감과 캔버스가 없었다.
그렇게 수채화 물감으로 종위 위에 아크릴화처럼 진하게 그려나갔다.
프라하 까를교 위 새벽 풍경 수채화 과정 (2020. 09)
수채화라 하면 말 그대로 물의 양을 조절하여 표현하다 보니 연해서 물감 자체를 종이 위에 붓으로 덧칠했다. 처음에는 물기가 많아 선명함이 떨어져 물기를 최대한 빼고자 했다. 그리고 종이가 종이로 보이지 않게끔 뒤덮어 진하게 칠했다. 덮어버리면 종이인지 캔버스인지 모를 거란 생각으로.
어떻게 보면 고흐의 작품을 따라 해 보고 싶었나보다. 그 작품 자체를 따라 해보고 싶었다기보다는 어두운 배경과 강에 비친 불빛을 표현해낼 때가 가장 궁금했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간접적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처럼 강렬하면서도 잔잔하게 담아보고자 했다.
당연히 그와의 느낌과는 다를 수밖에 없지만 잠시라도 그의 작품을 생각하고 내가 프라하에서 느꼈던 감정을 되살리며 그려볼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