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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전시로 배운 20세기 현대미술(야수, 입체파)

카메라 탄생이 초래한 현대미술 혁명

by 조용희

학교 다닐 때 미술 수업을 좋아했지만 미술사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 갖진 않았다. 그림을 그리거나 무엇을 만들 때 행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화가들의 그림 자체는 흥미롭게 느꼈지만 어떤 배경으로 그림의 유행이나 기조가 변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시험은 나름대로 외워서 잘 쳤던 것 같은데 지나고 와서 보니 시대적인 배경과 그 상황이 선명하지 않다. '인상파', '후기 인상파' 등의 용어만 기억할 뿐 내용은 아직도 모르겠다.


2019년 6월 24일 월요일, 서울 세종 문화회관에서 하는 '야수파 걸작전'을 보러 갔다. 그 주 토, 일요일은 서울에서 아트마켓을 했고 월요일, 화요일 휴가를 써놨기에 느긋하게 일어나 전시회에 갈 수 있었다. 더욱이 보통 전시회는 월요일에 쉬지만 이번 전시는 월요일에도 했기에 갈 수 있었다. 게다가 전시회 대표 작품이 '빅벤'이어서 더 관심이 갔다.


야수파 걸작전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


'혁명, 그 위대한 고통'이라는 표제 속 '혁명'이라는 말이 무척이나 강렬했다. 표를 끊고 전시회를 보기 시작하는데 너무 좋은 글귀들과 짧지만 이해하기 쉬운 설명들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렇게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을 조금씩 배웠고 그 혁명이 어떠한 의미로 말하고자 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위대한 그 혁명은 1839년 '카메라'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했다.


카메라가 나타나기 전에는 보이는 그대로 사물 자체의 모습이나, 역사적인 기록을 위해 담아내며 그리는 것이 화가의 역할이 었다면 카메라가 등장한 후에는 사물의 본질을 화가의 시선에서 담아내는 것으로 변했다. 보이는 그대로를 나타낼 수 있는 사진이 생기다 보니 더 이상 있는 그대로를 표현해 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느꼈나 보다. 어떻게 보면 카메라가 화가의 생계를 위협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화가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고 카메라가 담아내는 그 이상의 어떤 것을 표현해 나갔다.


"왜 하늘이 꼭 '파란색'이어야 하는가 풀은 반드시 '초록색'이어야 하는가." -앙리 마티스


앙리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 (1905)


대상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에서 벗어나 '색채 혁명'을 만들어냈는데, 원색을 사용하고 과감하면서도 단순한 표현으로 새로운 길을 걸어 나갔다. 너무 앞서 나가서였을까. 1905년 가을, 화가들의 전시인 프랑스 '살롱 도톤느'에서 색채 혁명을 이뤄냈던 그림들에 대한 시선은 차가웠다. 비평가들은 비난을 서슴지 않고 강한 원색과 거침없는 선들을 보고 '야수'라 불렀다. 그렇게 야수주의(Fauvism)가 탄생한다.


앙리 마티스뿐만 아니라, 라울 뒤피, 앙드레 드랭, 모리스 드 블라맹크, 키스 반 동겐 등이 색채 혁명을 이룬 대표 야수파 화가들이다.




"나는 '보이는 형태'를 그리지 않는다. 나는 내가 '생각한 형태'를 그린다." -파블로 피카소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1907)


앞서 언급했던 '색채 혁명'과는 다른 사물의 형태에 초점을 맞춰 '입체파(큐비즘)'가 탄생했다. 사물을 일편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입체적으로 다방면에서 보고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 피카소와 함께 조르주 브라크도 입체파 화가 중 한 명인데, 살롱 도톤느 전시에 '에스타크의 집'을 출품했으나 낙선은 물론이고 비평가들의 혹독한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브라크는 형태를 경시하고 풍경, 인물, 집 등의 모든 물체를 기하학적 도식, 입방체(Cube)로 환원하고 있다."

- 비평가 루이 복셀


조르주 브라크의 '에스타크의 집' (1908)

위대한 혁명을 이룬다고 할 때 그 시대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인 걸까. 당시에는 그렇게 홀대받지만 시간이 지나서 재 조명받고 그들이 진정한 미술사에서의 '혁명가'라고 인정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다.


전시를 보면서 그림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유익하고 흥미로웠기에 좋은 글귀들을 간직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데다, 따로 종이와 펜을 준비해서 가지 않았기에 휴대폰 노트에 적는 방법밖에 없었다. 작품은 작품대로 보고 좋은 글들은 글대로 담느라 정말 바빴다. 여태 본 전시들 중에서 스스로 제일 열정적으로 봤다. 필기를 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만큼 좋았기에.


전시를 약 네 시간 넘게 보고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확실히 필기도 한몫했다. 그렇게 알차게 보고 나오니 기념품을 파는 곳으로 이어졌고 엽서, 책갈피 등 일반적인 굿즈들 뿐만 아나라 전시에 담겼었던 글귀나 그림 등이 정리된 도록도 판매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메모하지 않고 도록을 사면되는데 하며 괜히 아쉬웠다. 안 해도 될 노동을 했다는 생각에 말이다. 마치 수업을 들으며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 모두 집중해서 필기했는데 수업 끝나고 핵심 정리된 것을 선생님이 프린트해서 나눠준 느낌과 몹시 흡사하다고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야수파 걸작전 전시를 보면서 메모했던 내용 발췌

그래도 지금까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으로 봐서 이것 마저도 추억이 되었나 보다. 그곳에서 파는 도록과 다른 굿즈들을 사서 나왔다. 보통 전시를 보고 나면 엽서 정도만 사곤 하는데 '야수파 걸작전'을 나중에도 또 보고 싶은 생각에 평소보다 많이 사게 되었다. 뿌듯했다.


'야수파 걸작전' 굿즈

야수파, 입체파는 '카메라'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미술사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카메라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만들어졌는데 이를 통해 화가의 일(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던 일)을 위협했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문물로 인해 다른 방향으로 탐구해 나갔다. 보이는 것에서 벗어나 사물의 본질, 그리고 철학적인 화가의 입장에서의 표현 등으로 확장해서 '색채 혁명', '입체 혁명'을 이뤄냈다. 이 내막에 화가라는 직업의 생존, 필요 문제가 어느 정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본다.


18세기 영국의 1차 산업 혁명을 통해 노동자들은 더욱 빈곤해지며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이 불거졌다. 사람의 일을 기계가 대신할 수 있게 되면서 기계 파괴 운동인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다. 현재 4차 산업혁명까지 오게 되면서 인공지능(AI)을 통해 실제와 가상이 통합되어 제어할 수 있으며, Big data 수집과 인공지능을 통해 행정이나 법률과 관련된 전문직도 위협받고 있다. 산업혁명을 통해서 편리해지는 것은 사실이나, 그만큼 현재 종사하고 있는 일이 언제 대체될지 모른다.


길을 가다 보면 셀프 계산대를 이용하는 무인 편의점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제조업에서도 자동화를 구축하여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일자리도 대체되어 가고 있다. 자율주행을 통해 사고의 위험성이 줄어든다면 이와 관련된 산업들도 점차 힘을 잃어갈 것이다.


이렇게 과학이 발전하면서 현재의 일자리를 위협받을 수 있다.


전시 얘기를 하다가 다른 길로 샌 듯하지만, '카메라'의 발명으로 화가의 미술 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이 지금의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어느 무엇에도 대체되지 않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모두가 더욱더 발전해나가지 않는가 싶다.


앙드레 드렝의 '빅벤'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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