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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드로잉 하면서 드는 생각들

타워브리지 펜 드로잉 과정

by 조용희

지금까지 여행에서 담았던 사진을 그리거나, 여행하며 현장에서 그렸던 그림들에 담긴 이야기가 브런치 글 대부분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들었던 생각에 대한 글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 글은 모든 것을 배제하고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해서만 다뤄보고자 한다.


드로잉 할 때의 전체적인 상황과 과정, 그리고 생각들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이전 글에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나, 드로잉이 나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썼다. 이번에는 조금 더 그림 그리는 것 자체에 주안점을 두고 런던의 랜드마크인 '타워브리지'를 그렸던 과정과 들었던 생각에 집중하려 한다.


타워브리지 연필 스케치

보통 퇴근하거나 주말에 시간 여유가 있을 경우 카페에 가서 커피 주문하고 그림 그릴 준비를 한다. 그렇게 커피를 옆에 둔 채 필통 안에 있는 연필, 지우개 그리고 펜을 꺼낸다. 미리 그릴 사진을 정해 놓았다면 일사천리지만 새로 그려야 한다면 그때마다 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둘러본다. 여행 추억에 잠기면서 그리고픈 사진을 선택한다. 이번에는 '런던탑 쪽에서 바라본 타워브리지'이다.


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은 새로운 그림 그릴 전용 폴더에 복사하여 옮겨 놓은 뒤, 사진을 가로로 큰 화면으로 두고 음악을 튼다. 디스플레이 화면 자동 꺼짐 시간은 최대인 10분으로 해 놓는다. 펜 드로잉은 왠지 클래식이 잘 어울릴 것 같지만 발라드나 랩을 들으며 그림을 그린다. 조용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그리고 싶을 때는 당연히 클래식을 튼다. 음악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한다.


그릴 준비가 다 되면 연필을 쥐고 대략적인 윤곽을 잡아 나간다. 연필은 아무래도 지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거침없이 그려나갈 수 있다. 구도가 잡아지지 않아도 괜찮다. 왜냐 지울 수 있으니깐. 되돌릴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그만큼 좋은 점이 없다. 실수해도 다시 돌아갈 수 있으니. 그래서 더 자유롭고 편하게 획을 더해가나 보다.


연필로 대략적인 형상을 그려가며 구도와 균형이 맞아지는지 생각을 거듭한다.


타워브리지 펜 드로잉 과정


그렇게 연필과 지우개를 번갈아 쓰다 보면 다듬어져 가고 이후 펜을 쥔다. 대략적인 윤곽을 잡아놨지만 펜으로 그리는 것이다 보니 더욱 신중해진다. 펜으로 쓰면 다시 되돌리기 힘들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주위에서 그림 그리다 다르게 그려 실수하면 어떻게 하는지 생각보다 많이 물어본다. 그러면 "새로운 종이에 다시 그리면 되죠"라고 쿨하게 말하고 싶지만 그려놓은 것을 다시 처음부터 한다면 엄두가 안 난다. 나는 실수로 그은 선이 있다면 그 주위에 펜 획을 더해 조금씩 바꿔간다. 어떻게 보면 실수라는 것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건물을 그릴 때 수직으로 선을 그어야 하는데 약한 대각선처럼 한쪽으로 기운다면 선들을 추가로 그어가며 '수직처럼 보이게' 한다. 이번 타워 브리지 그림에서도 건물이 내려올 때 선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선들로 이루어져 있고 양옆을 기준으로 수평되게 조절한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쌓여 간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타워브리지 펜 드로잉 과정


약간은 흐릿한 연필 선 위로 선명한 펜의 획이 더해질 때 뚜렷해지는 느낌이 좋다. 두 가지 묘한 느낌이 드는데, '평평한 목판 위에 칼로 파내면서 만들어지는 듯한 느낌'과, '찰흙으로 조형물을 만드는 느낌'이 공존한다. 드로잉에 집중하다 보면 종이라는 평평하고 매끈한 매개체 안으로 파고들어 만드는 것과 그 위에 쌓아 올리며 만드는 것이 함께 느껴진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밖을 따라가다 보면 안으로 있고 안으로 시작해서 그 끝을 따라가다 보면 밖으로 나오는 느낌이랄까.


펜으로 획을 더해가며 완성할 때면 손이 종이 위에 닿여 연필이 번진다. 그런데 그 느낌이 오히려 더 완성된 느낌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래도 지우개로 지워내야 한다. 지우개로 말끔히 지우면 펜 선만 남게 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진다. 지우개로 연필 흔적을 지우는 것은 땅 속에서 오랫동안 있던 유물에 묻은 흙을 깨끗하게 털어내는 듯하다.


타워브리지 펜 드로잉 과정

지우개로 말끔하게 털어낸 뒤 그림을 보면 완성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주로 여행했을 때 찍었던 사진을 그리다 보니 그때의 추억이 당연히 떠오르고 끝에는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다시 영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당장 갈 수 있는 상황이 안되지만 언젠가 갈 날을 기대해본다.


런던의 '타워브리지' (202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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