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드로잉으로 디자인하고 에코백을 만들어 판매하다
그림 취미를 찾은 뒤 내가 그린 그림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한창 고민할 때였다. 2016년 대학교 4학년 때 초등학생 두 명 수학 과외를 했었는데, 수업이 끝나거나 중간 쉬는 시간에 학생 어머니와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한 학생의 어머니께서는 미술 쪽을 전공하셨고 대학원생들을 지도하신다고 하셨다. 자연스레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보여드렸다. ‘선생님, 그림으로 에코백을 만들면 예쁠 거 같아요’ 이 한마디가 내가 그린 드로잉으로 굿즈를 제작하게 되는 시작이었다.
그 당시 ‘세라믹스 공정’, ‘복합재료’, ‘MEMS 개론’, ‘융합소재 설계학’ 등 듣기만 해도 공대스럽고 나에겐 흥미롭지 않은 과목들을 수강하고 있어 신선하고 색다른 것을 하고 싶었다. 더욱이 4학년 2학기로 넘어가면 ‘취업준비생’의 신분으로 다른 것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거라 생각했기에 당장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우선 ‘어떤 그림’으로 ‘어떤 디자인의 에코백’을 만들면 좋을지 고민했다. 보통 나는 건축이 들어간 풍경을 위주로 그리는데 에코백에는 다른 그림을 넣고 싶었다. 과외하는 집에서 고슴도치를 키워 가끔 고슴도치를 구경하고 손바닥에 올려서 바라보곤 했다. 귀여움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가시에 찔릴까 많이 두려웠지만 순한 고슴도치여서 손바닥 위에 조용히 잘 있었다. 그 순간 고슴도치가 해답으로 떠올랐다. 귀여운 고슴도치를 그린 그림으로 에코백을 만들면 학생 어머니께도, 나에게도 당연히 의미가 있으니.
그릴 대상을 정해서 그렸고 그다음은 이 ‘에코백의 원단’ 과 ‘디자인’었다. 에코백의 원단을 고르기 위해 서울 동대문 시장에서 다양한 원단을 구경하고 일부 샘플들도 받아와서 비교해봤다. 청바지와 같은 소재의 에코백은 어떨지, 검은색 원단에 흰색으로 그림이 그려지면 어떨지, 질감과 두께감은 어느 정도면 좋을지 고민했고, 또 적당한 끈의 길이는 얼마일지 생각했다. 아이디어와 고민의 흔적은 모두 노트에 기록해서 들고 다니며 끄적이곤 했다.
에코백 100개를 만들어 팔아보는 것이 목표였고 내 기준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제작 업체가 필요함을 느꼈다. 검색하니 많은 업체들이 있었다. 심지어 보편적인 크기와 여러 소재의 에코백이 있었고 베이지색 무지 에코백에 각자의 디자인만 프린트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방이 탄생되는 것이었다. 즉 나는 그림과 디자인만 하면 됐었다.
앞서 서울 동대문에 가서 원단을 둘러보고 에코백 가로, 세로, 폭 길이뿐만 아니라 끈의 길이까지 생각했던 것이 헛수고는 아니었다. 치열한 생각과 고민, 바로 실행에 옮긴 행동은 훗날 아트마켓을 준비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비록 업체가 정해놓은 규격을 따른 에코백 제작이었지만 말이다.
마지막은 ‘디자인’이다. 에코백 속에 고슴도치 그림만 들어가는 것을 구상해보니 이유모를 아쉬움이 있었다. 글자가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림 아래 무엇이 어울릴지도 노트에 다양하게 그리고 적어봤다. ‘고슴도치’를 의미하는 여러 나라의 단어들을 써봤는데 영어는 ‘Hedgehog’, 프랑스어로 'Herrison' 스페인어로 'Erizo'였다. 이 중에서 적당한 길이와 고슴도치 그림과 어울리는 것은 'Herrison‘이 었고 이 단어를 손으로 직접 그림 아래에 써 디자인 마무리를 짓고 스캔하여 파일로 저장했다.
그림 디자인이 마지막인 줄 알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하나가 더 남았다. ‘라벨’이다. 여러 브랜드의 에코백을 보면 옆쪽 아래에 해당 브랜드나 기타 다른 글귀의 라벨이 붙어있다. 굳이 없어도 상관은 없지만 라벨이 에코백의 마지막 화룡점정이라 생각해서 포기하지 않았다. 또 라벨 제작 업체를 찾아야 했고 디자인이 들어가야 했다. 나의 이름 한 글자를 영어로 한 ‘yong’으로 디자인해 그려 친구에게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고 곧바로 튀어나왔다. 여러 가지 색깔별로 모든 경우를 한 번에 보내줬다. 컴퓨터의 신이다.
여기서 난관 아닌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데 라벨 최소 주문 수량이 1000개라는 것이었다. 난 100개만 있으면 되는데 말이다. 900개는 필요 없었지만 욕심이 있어 1000개를 주문했다. 금액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적은 돈은 아니었다. 결국 에코백을 만들 때 쓴 라벨을 제외하고 수백 개는 내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아직도 잘 있다. 다음에 또 꺼낼 일이 있지 싶다만.
에코백을 제작업체에 주문하여 만드는 데 까지도 시간은 물론이고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정말 많은 손이 갔다. 그래도 진심으로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해서였을까 힘들지 않고 즐거웠다.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과정을 쭉 해쳐 나가는 것에 성취감도 있었다. 내 드로잉으로 에코백 제작을 하게 된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를 짓고 다음 글에는 이후 에코백 판매와 다른 에피소드들, 아트마켓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