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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드로잉이 나에게 주는 의미

드로잉 하면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가치들

by 조용희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 드로잉을 통해 여러 가지 했던 일들을 다뤘지만, 정작 그림 그리는 것 자체에 대한 얘기가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드로잉이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대학교 늦무렵부터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고, 보통 드로잉을 할 때 음악 들으며 사진 찍었던 풍경을 폰으로 보면서 스케치북에 담는다. 연필로 연하게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선명하고 날카로운 펜으로 채워나가는데 그림의 매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매력적이다. 그 이유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써보겠다.


첫 번째 드로잉의 매력은 ‘걱정과 고민을 내려놓게 되고 생각이 멈춘다’는 것이다.


펜을 잡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이 멈춘다. 그저 그릴뿐이다. 눈은 대상을 바라보고 손은 그대로 움직인다. 처음에는 한 가지 생각,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쭉 생각해보면서 그려보려 한다. 아이러니하게 그리다 보면 생각은 하지 않고 그림에만 신경 쓴다. 드로잉이 끝나고 나면 ‘이 고민을 하고 답을 냈어야 했는데..’ 하며 머쓱해한다. 살면서 여러 고민, 걱정의 순간이 많은데 아무 생각하기 싫고 다른 것에 몰두하고 싶다면 드로잉을 추천한다.


두 번째 드로잉의 매력은 ‘언제 어디서나 혼자라도 좋다’이다.


나는 약속 없을 때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게 잘 놀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매일 혼자라면 문제겠지만. 시간이 날 때 카페 가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평일 중간에 휴가를 쓰게 되거나 쉬는 날이면 느지막이 일어나서 준비하고 밥을 먹은 뒤, 가방 하나 들고 카페로 향한다. 최근에야 글도 쓰긴 하지만 처음엔 그림을 그리러 가곤 했다. 도착하면 가방 안에 그릴 A4 용지보다는 작은 크기의 스케치북과 연필, 지우개, 펜이 있는 필통을 꺼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드로잉 하는데 그리다 보면 어느덧 두세 시간 훌쩍 지난다. 덧붙여서 약속이 있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거나 상대방이 늦을 경우, 기다림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기분이 덜 나쁘다. 그 시간에 카페에서 기다리며 그림 그리면 시간은 금방 가니까. 드로잉은 혼자만의 시간을 알차고 잘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친구다.


카페에서 드로잉.jpg 카페에서 드로잉 할 때 모습


세 번째 드로잉의 매력은 ‘과정에서부터 결과까지 모든 것이 가치 있다’는 것이다.


앞서 그림의 매력은 머리부터 발끝까지라고 했다. 이 말의 본질은 그리는 과정에서부터 완성한 결과물까지 모든 것이 의미 있다는 것이다. 그리다 보면 온갖 고민에서 떨어뜨려 줄 뿐만 아니라 그리는 중에도 집중과 힐링을 부여해준다. 드로잉 하는 동안 마음 한편이 편안해진다. 드로잉 과정에서 얻는 것들로만 해도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러나 완성하고 난 다음 드로잉 한 작품을 볼 때면 성취감에 더욱 기쁘다. 연필과 펜을 잡고 종이 위에 그리기 시작한 순간에서부터 마지막 획을 그을 때까지의 과정이 종이 위에 온전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완성한 그림을 보면 누구든 그렇겠지만 뿌듯한 감정이 크게 다가온다. 그림은 불태우지 않는 이상 바래지더라도 보존되니깐 남는(?),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생산해 낸다는 것은 본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가치에 대해 뭐라 할 수 없으며 또 뭐라고 할지라도 상관없다. 난 내가 드로잉 한 그림을 보면 기분 좋다.


네 번째 드로잉의 매력은 ‘드로잉 자체의 무궁무진한 응용’이다.


‘드로잉(Drawing)’이란 선으로 그리는 모든 것을 지칭한다. 처음 내 그림을 통해서 에코백을 만들어 판매해본 것들은 물론이고 엽서, 스티커, 책갈피, 손거울 등 여러 가지 굿즈에 접목해보았다. 과거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바뀌었다지만 더 나아가 본인이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것이 대세다. 거리를 거닐다 보면 향수 만들기 공방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원하는 향료를 적절한 비율로 섞어서 본인만의 향수를 만든다. 같은 맥락으로 ‘가죽 공방’, ‘드로잉 체험’ 등 원데이 클래스가 많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구매할 수도 있지만 직접 만들었다는 가치가 크기에 더욱 애착이 간다.


드로잉은 간접적이지만 또 직접적인 굿즈를 제작할 수 있다. 나의 경우, 그린 그림들을 스캔한 뒤 파일로 갖고 있으며 굿즈 제작 업체에 내 드로잉 파일을 업로드해서 굿즈를 주문한다. 엽서, 스티커, 책갈피 등은 만들어봤으나 아직 달력을 만들어보지 못해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본인 그림의 굿즈를 만들면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의미가 있고 좋다. 더 나아가 ‘아트마켓’에서 일면식이 없는 사람에게도 판매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의미가 깊다. ‘매출은 보장 못하지만 즐거움, 행복은 보장할 수 있다.’ 나는 유럽 풍경을 그린 것들로 굿즈를 만들어 아트마켓에 참여하는데 보러 오는 손님들과 ‘여행’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얘기를 해서 좋다. “아 여기 빅벤 아닌가요? 작년에 다녀왔었는데..” 혹은 “여기 런던의 타워브릿지 아닌가요? 가보고 싶었는데..” 등 여행을 매개로 한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다. 여행을 좋아하기에 각자의 경험과 추억을 얘기하는 것은 정말이지 행복하고 기분 좋다. 아트마켓에 대한 경험과 더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다른 글로 담을 예정이다.


다섯 번째 드로잉의 매력은 ‘여행의 추억을 선명히 떠올려주는 매개체’라는 것이다.


‘여행 드로잉’이라는 키워드가 요즘 그림을 그리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핫한 용어다. 여행을 갔을 때 추억을 간직하는 방법은 사진, 동영상, 일기, 기념품 등 다양하다. 모두 다 여행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오르게 해주는 소중한 방법들이다. 나 역시 앞에 모든 것은 물론이고 추가로 그림을 그려 순간을 기록한다.


#어반스케치 #여행드로잉 #여행스케치 등 SNS에 해시태그로 검색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드로잉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나 역시 직접 풍경을 보면서 그리는 드로잉도 하고, 사진으로 풍경을 담고 카페나 숙소에서 찍은 것을 보면서 그리기도 한다. 나의 경우, 사진 보고 그리는 것이 더욱 익숙한데 시간 제약이 없으니 틈 날 때마다 그려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할지라도. 시간을 오래 쓰다 보니 완성도가 조금 더 높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보고 그리는 것은 여행했을 때의 추억이 더욱 생생히 떠오르고 그릴 당시에 있었던 일들이 눈에 선하다. 이번 해 9월 파리에 여행했을 때, 몽마르뜨 언덕에 가서 사크레 쾨르 성당을 바라보며 서서 그렸을 때였다. 단체여행 온 듯한 외국인들이 함께 와서 멋지다고 해준 것, 사진 찍어도 되는지 묻는 사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봐준 사람들 모두 고마웠다. 그때 그렸던 그림을 다시 보면 그 순간이 떠오른다.


몽마르뜨 언덕.jpg 몽마르뜨 언덕에서 사크레 쾨르 성당 보며 담은 그림(2019)


드로잉의 매력과 가치는 정말이지 끝도 없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에게는 일부 공감이 있었을 것이고 그림을 그리진 않지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호기심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을 그려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드로잉을 시작, 시도해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요즘에는 유튜브에서 드로잉 수업에 관한 영상들을 볼 수 있고, 인터넷이나 SNS에 검색하면 드로잉 클래스가 많아 신청해서 배울 수도 있다. 혼자 하는 것이 두렵다면 그림 동호회 등도 많이 있으니 ‘의지’만 있다면 시작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드로잉’의 매력에 빠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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