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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드로잉이 주는 여행 추억 법

영국에서 드로잉한 그림들과 그 추억

by 조용희

앞서 ‘#6. 드로잉이 나에게 주는 의미’라는 글에서 다뤘던 드로잉의 매력, ‘여행의 추억을 선명히 떠올려주는 매개체’에서 영국 풍경을 담았던 얘기를 하고자 한다.


여행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방법은 저 마다 다르다. 여기서 ‘기억’‘추억’을 나누어서 표현하고 싶은데 국어사전에서는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기억 :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서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냄’, ‘사물이나 사상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추억 :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이나 일’


두 단어가 가진 국어사전의 정의가 생각보다 큰 차이가 없지만 내 기준에서 둘의 차이를 간단히 구분하면 ‘기억’은 2D, ‘추억’은 3D와 가깝다.


‘나는 2015년에 영국의 윈저성을 방문했다.’와 같이,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을 ‘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추억’은 한 단계 더 나아간 3D로, ‘나는 2015년 영국의 윈저성에 방문했다. 윈저성이 멋지고 아름다워 사진을 찍고 근처 카페에서 달달한 커피를 마시면서 기분 좋게 그림을 그렸다. 카페 안은 살짝 어두웠지만 아늑했고 따뜻했다.’ 이는 ‘추억’이다. 어떠한 매개물로 인해 그 당시의 상황과 감정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여행의 여운 깊이 남는다. ‘추억’은 ‘기억’ 보다 캐기 어려운 광석과도 같다.


영국의 윈저성(2015)


영국 여행했을 때 일기장에 담긴 그림을 보면 추억이 떠오른다.


2015년 2월, 영국 런던에서 남쪽으로 기차 타고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이스트본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보통 남쪽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브라이튼(Brighton)'과 ‘세븐 시스터즈(Sevensisters)'를 같이 방문한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았기에 한 곳을 더 추가하고 싶어 이스트본도 추가했다. 기차를 타고 내린 뒤, 버스로 갈아타서 이스트본 피어(Eastbourne pier)에 도착했다. 바다 위에 위태해 보이지만 안전하게 바다와 어우러진 피어를 보고 아름다워 사진에 담았다. 점심때쯤 도착했기에 배가 고팠고 영국의 대표 음식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를 먹으러 갔다. 따로 검색하지 않고 보이는 곳에 가서 먹었다.


음식을 먹으면서 이스트본 피어를 그리고 싶어 졌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이스트본의 추억을 나만의 방법으로 남기고픈 마음이 컸기에. 피시 앤 칩스를 다 먹고 콜라를 마시면서 직접 찍은 사진을 일기장 노트에 그렸다. 그리는 중에 주위에 있던 외국인들이 나를 주목하고 얘기하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그들을 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의미인지 안 좋은 의미였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그림을 그리고 추억의 조각을 완성할 수 있다는 행복함만 떠오를 뿐이다.


영국의 이스트본(2015)


‘쉽게 얻기보다 어렵게 얻는 것이 대체로 더 오래 남는다.’


미리 말하지만, 쉽게 얻는 것이 가치 혹은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어렵게 얻는다는 것이 땀을 흘려야 하고 시간과 돈을 많이 써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


나의 예로 들면 학창 시절 수학 문제 풀 때가 생각난다. 고등학생 시절, 어려운 수학 문제에 직면하면 바로 답지의 풀이를 보지 않고 며칠이 걸려도 문제 풀이를 시도한 적이 있다. 운 좋게 풀이법을 스스로 알아내 해결하면, 성취감은 이로 말할 수 없다. 더 나아가 비슷한 유형의 문제에 맞설 때면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까먹지 않고 다시 풀어낼 수 있다. 아마 수학 문제와 씨름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이와 다르게 잠시만 고민하고 문제풀이를 본다면 그 당시에 이해될지 몰라도, 나중에 다시 보면 기억이 나지 않아 끝내 못 푼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물론 모든 수학 문제를 그렇게 해결한 것은 아니다. 답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여행도 사는 것도 다 이와 같지 않을까. 쉽게 얻어지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꼭 고생하고 힘들게 다녀야 오래간다는 말이 아니다. 있었던 일들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기록하면 오래 ‘추억’할 수 있다.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 드로잉으로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커다란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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