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목적이지만 여행을 하다가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어 담고 싶어서 그리는 것과,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보고 싶어서 여행하는 것은 사뭇 다르게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행하는 것도, 아름다운 풍경을 펜으로 담는 것도 모두 행복한 일이자 좋아하는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와 같은 질문이라고 하면 와 닿으려나. 분명 여행과 그림은 다른 영역이지만 두 가지를 모두 좋아하는 나로서는 함께한다면 더욱 좋다.
프라하행 기차 안에서 직접 보며 그린 그림
그림을 처음 그리게 되었을 때, 마음에 드는 풍경이나 건축을 사진으로 담아와서 사진을 확대해가며 차근차근 그려나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진을 보면서 드로잉 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렇게 습관이 되고 체화되다 보니 막상 풍경을 보면서 곧바로 그릴 때 어색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사진을 보지 않고도 바로 풍경을 보면서 그릴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여행을 하면서였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사진 찍은 다음, 앉아서 그릴 수 있는 카페나 음식점 등을 찾아가 그리는 것은 시간 효율에서도 아쉽고감동의 여행 흐름이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 가서도 시도를 해봤지만 기본적인 연습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한 때 카페에 가서 내부의 풍경들을 그리곤 했다. 사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말이다.
카페 안에서 직접 보고 그린 그림
보며 그리는데 시간은 어쩔 수 없이 오래 걸리기도 했고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그림의 획도 결단력 있게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줄거라 믿었기에 가끔씩 직접 보면서도 그림을 그리곤 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낯설고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요즘에는 '어반 스케치(Urban Sketch)'라고 하여 여행하며 본 풍경을 현장감 있게 그려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SNS에도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모여 여행지에서 각자의 시간을 갖고 그린다. 드로잉을 한다라는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현장을 직접 펜으로 담는 것은 참 매력적이다. 나도 가끔은 여행지에 가서 직접 보며 그리긴 하지만, 여러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그려본 적은 없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사람들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아직까지도 나는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이 더 좋고 편하다. 그리는 공간의 제약도 없을뿐더러 시간을 느긋하게 두고 천천히 그리면 되기에 마음의 여유를 주는 가장 큰 부분이다. 그리다 힘들면 쉬어도 되고 그리다 내키지 않으면 그리지 않아도 된다.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편하게 접근하는 것이 곧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게 아닐까 싶다.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세인트 폴 대성당)
그러고 보니 재작년 영국 여행에서 담아온 버킹엄 궁전의 모습을 1년 넘게 그리고 있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많이 그렸는데 멈춰져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란 것을 알아서 몇 번을 시도하다가 아직도 남아있다. 조금만 더 그리면 끝을 낼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미루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해가 끝나기 전에는 꼭 완성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