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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희 Jun 12. 2021

파리의 개선문 드로잉 과정

파리의 개선문을 그리다

 보통 드로잉 할 때에는 크게 두 가지, 직접 보면서 그리거나 풍경을 담은 사진을 보면서 그린다. 사진은 주로 내가 찍은 것을 보면서 드로잉 하지만 가끔은 주변 사람이나 지인들로부터 공유받은 사진도 그리곤 한다. 파리의 명소를 그릴 당시에 개선문을 그리고 싶어 사진에 진심인 형으로부터 여러 사진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담긴 개선문 사진은 있었지만 조금은 구도가 생소하면서도 몰입될 수 있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


 개선문의 여러 사진을 받아 보다, 개선문 중간으로 가로등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풍경에 꽂혀버렸다. 중앙에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 우선 흔하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유럽 여행을 가면 가로등을 좋아해서 더욱 끌렸다.


 가로등을 왜 좋아하느냐고 물어본다면, '아름다우니까요'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두울 때 붉을 밝혀주는 따뜻한 느낌도 좋고 불이 꺼져있더라도 괜스레 거리의 든든한 버팀목 같아 보여서 애착이 간다.


파리의 개선문


 사진을 선정한 뒤에는 연필로 연하게 밑그림을 한다. 호기롭게 펜으로 바로 그릴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마음이 더 크기에 연필을 쓴다. 경험상 펜으로 그리다 보면 창문의 수가 6개인데 4개까지 그리다 공간을 모두 써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고, 종이의 한가운데에 맞춰서 중심을 잡고 그리고 싶은데 갈수록 올라간다거나, 배치가 삐뚤 해지는 경우가 있어서 밑그림은 중요하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큐비즘의 대표 화가인 피카소 그림 2% 정도 닮게 구도가 흐트러진다. 가끔은 연필로 밑그림 한 것만 봐도 든든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마치 원고지 글자 칸 안에 글을 꽉 채 워쓰는 느낌이랄까.



 파리의 개선문 밑그림을 그리고 나면 본격적으로 펜을 잡고 사진 보면서 차분히 그려나간다. 연한 회색 연필 선 위에 진한 검은색의 펜이 선명하게 피어나기 시작하는데 그 또렷한 느낌이 좋다. 보통 스테들러의 피그먼트 라이너 0.05mm를 사용하는데, 가늘기 때문에 아주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그림을 그릴 때 보통  커피를 마시거나 물을 마시면서 느긋할 때는 느긋하게 집중할 때에는 초집중해서 그린다. 그러다가 더 이상 그릴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잠시 쉰다.


 그림을 그리는 데에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서 온전히 마음이 내킬 때 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작은 소망이다. 그림 안 그린다고 누가 혼낼 사람도 없지 않은가. 강제성이 없이 하는 것이 더 자유롭고 좋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리는 빈도가 줄어든 것 같아 약간의 강제성도 부여해야 할까 고민 중이다. 마치 매주 토요일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업로드하는 것처럼. 고민을 더해봐야겠다.



 그림을 그리면서 완성하는 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틈 날 때, 마음이 내킬 때 그리다 보니 며칠은 족히 걸린다. 예전에 올린 글도 있지만 영국 런던의 '버킹엄 궁전'은 1년 정도 더 이상 그리지 않고 대기 중이다. 올해는 꼭 완성해야지하고 또 다짐해본다.


 다시 개선문 드로잉 과정으로 돌아오자. 그렇게 조금씩 쌓아서 그려 가다 보면 어느 정도 끝에 가깝게 다가올 때 왠지 모를 부푼 마음이 차오른다.



 사진을 보다 보면 모두 담기에는 너무 많고 엄두가 안 날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에는 단호히 생략한다. 중요한 것에만 집중해도 모자라기 때문에 핵심을 그리고 뒤편의 배경은 연하게 흐리는 작업을 한다. 멀리 있기에 그렇게 보이기도 하고 아득하게 표현하는 것이 원근감을 조금이나마 더 느껴지게 할 수 있고 개선문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니까.


 드로잉을 끝내고 나면 연필의 흔적을 지우개로 지운 뒤, yong이라고 내가 그렸다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 그림 한편에 서명하듯 쓴다. 그러면 진짜 드로잉 완성이다.


 이후엔 사진을 요리조리 찍는다. 펜이랑 같이도 찍고 펜을 빼고 그림만 찍거나 확대해서 찍기도 한다. 그중에서 최종 마무리는 아무래도 스캔을 뜨는 것이다. 그림 원본을 고이 감싼 뒤에 서울 을지로에 간다. 예전부터 가던 곳이 생겨 그 사장님께 부탁드려서 드로잉 스캔본도 함께 받는다. 아주 당연히 돈을 지불한다.


 스캔본을 볼 때면 그림의 세밀한 선을 잡아주는 것도 좋고 주위가 하얘서 흑백이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에 집중도가 높다. 실제로 당시 사용했던 종이는 완전 하얀색은 아니었고 아주 연하게 노란빛을 띤다. 초중학교 시절 전문가용 8절지 혹은 4절지 스케치북을 샀을 때 그 종이 느낌이다.


 그림을 이따금씩 자주 보는데 다시 떠나고 싶은 마음이 확 든다. 여행이 고프다. 어떻게 보면 일상에서부터 떨어지고 싶기도 하고 유럽을 거닐면서 다시 충전하고 싶다. 백신의 투여율이 높아지면서 각 여행사에서 해외여행 상품을 내놓는 추세다 보니 머지않았다고 생각해본다. 그때까지 손꼽아 기다려 봐야겠다.


파리의 개선문 (201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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