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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혼 Jul 02. 2019

교실 이야기

연쇄 실종 사건

"선생님 지우개가 없어졌어요."

“선생님 제 샤프가 사라졌어요."


이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재촉한다. 찾아봐하고는 돌려보낸다.


"찾아봐도 없어요."


 잠시 뒤 찾아온 학생에 맞춰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하곤 그제야 사건 현장을 방문해본다.

 아이들은 대부분 물건을 잃어버리고는 없어졌다, 사라졌다고 말한다.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 그들은 결백하다. 아이들은 물건에 대해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았으며 당연하게 자기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물건이 사라졌고, 없어졌다고 말한다.


 실종의 원인은 누가 가져갔거나 물건에 발이 달렸거나 둘 중 하나다. 대게 사건은 학생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가 아닌 가만히 앉아 있는 수업 시간에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누가 가져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사람이 보지 않은 사이에 몰래 발을 내밀어 도망친 물건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워낙 물건들이 발 빠른 까닭에 아이들은 도망치는 장면을 포착할 수 없다. 소리를 내기도 하나 아이들의 포위망은 금방 벗어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하지만 교사는 이미 사라진 물건들의 도주 경로가 눈에 선하기만 하다. 뒷짐을 지고 경력 많은 수사반장처럼 가늘게 눈을 뜨고 어슬렁거려본다.


 물건은 종류에 따라 도주 경로가 달라진다. 연필은 생긴 것처럼 우직하고 둔하게 앞으로만 나아간다. 운동신경이 좋지 않아 책상에서 뛰어내리며 머리를 다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뛸 엄두도 못 내고 누워서 질질 구를 수밖에 없으니 얼마 못 가 발견되곤 한다. 비슷하게 생긴 샤프, 사인펜 같은 놈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우개는 유연하고 탄력적인 신체를 가진 까닭에 책상에서 뛰어내리면서 가속을 붙여 멀리 달아난다. 다른 분단을 넘어가는 일도 잦아서 아이들은 건너편 친구들에게 수사권을 일임하기도 하지만 협조는 영 시원찮다. 따라서 수사 범위를 넓게 잡아야 하며 작고 단단하게 생긴 놈일수록 멀리 달아나니 인상착의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인내심을 갖고 차분히 뒤지다 보면 시커멓게 먼지를 뒤집어쓴 놈들을 찾을 수 있다.


 필통은 그 큰 덩치에 맞는 두뇌를 가지지 못한 건지 여러 놈들의 꼬드김에 넘어간 건지 모르겠지만 자주 도주를 시도하는 녀석이다. 물론 무식하게 큰 까닭에 동네방네 소문을 내며 뛰어내리니 아이들에게도 쉽게 검거되지만 교사에게 수사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엔 딱 한 가지뿐이다.


 어딘가 폭신한 곳으로 뛰어내린 경우뿐이다. 그곳은 앞에 앉은 아이의 가방이나 옆에 걸린 보조가방으로 소리 없이 사라졌기에 아이들은 눈치채기도 어려울뿐더러 경험 부족으로 도저히 찾을 수 없다. 무심하게 뒤져 보라고 하면 아이들은 깜짝 놀란다. 보지도 않고 어떻게 여기 있는 줄 아냐고.


 그 외에도 책, 실내화, 물통 등 여러 물건들이 실종된다. 그리고 아이들은 보지 않고도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선생님을 보면서 힘이 센 아빠 또는 못 하는 요리가 없는 엄마를 떠올리는 듯하다. 동경의 눈빛을 한 채 쳐다본다. 씨익 웃으며 돌아서면 사건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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