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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혼 Jul 02. 2019

교실 이야기

벚꽃 나무 아래 교학상장

  학교를 옮겨 바쁜 와중에 조용해진 오후, 한시름 덜고 햇살이 비치는 창가 쪽을 바라보니 나무 한 그루가 창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4월 초, 봄을 아름답게 수놓을 벚꽃나무였다.


"우와 꽃 예쁘다!"

"어디? 우와!"


 아이들의 말은 매번 느낌표로 끝난다. 오늘 같은 상황에선 느낌표 하나로는 부족하다. 봄을 맞아 피어나는 꽃을 발견하곤 큰 소리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소리를 지른다. 바쁜 와중에도 고개를 돌려 보니 화사한 핑크빛 꽃이 만개한 것이 보였다.


"와 벚꽃이 예쁘게 폈네."


 교사의 말은 진정성이 조금 떨어진다. 수십 년째 맞이하고 있는 봄을 마냥 즐거워만 하기엔 나이가 많다. 다시 고개를 돌려 일에 집중하려는데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타자를 멈추게 만든다.


"선생님, 아닌데요?"

"뭐가?"

"벚꽃 아닌데요?"

"맞아."

"아닌데요?"

"벚꽃 몰라? 잘 봐. 저게 벚꽃 나무지, 뭐야?"

"아닌데..."


 아직 열 살이니 벚꽃을 잘 모를 수 있다 싶어서 단단히 일러주었다. 아이는 내 말에 혼란스러워했다. 아닌데 아닌데 하며 갑자기 교실 밖으로 달아났다. 잠시 뒤 다른 학생을 데리고 나타나서 소리쳤다.


"선생님, 벚꽃 나무 아니고 흑자두 나무예요!"

"흑자두 나무? 잘 못 본 것 아니야?"

"맞아요. 저기 봐요. 나무에 달려 있어요."

"잘 못 달린 것 같은데?"


나는 핸드폰을 꺼내 흑자두 나무를 검색해보았다. 교실 창가를 가득 채운 나무의 정체는 흑자두 나무였다. 아이들과 함께 흑자두 나무와 벚꽃 나무를 번갈아 검색해보았다. 꽤 닮아 보였다.


"와, 정말 두 나무가 비슷하네."

"그렇네요!"


 감사하게도 학생들은 내가 힘주어 말했던 벚꽃 나무에 대한 기억을 신경 쓰지 않는 건지, 모른 척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 말에 공감하며 같이 두 나무를 비교해주었다. 뻘쭘해진 나는 괜히 흑자두 나무의 아름다움을 감탄하며 다시 일하러 책상 앞으로 돌아갔다.

 아이들과 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창가 앞에 자리 잡은 벚꽃 나무에 대한 막연한 설렘으로 기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는 말처럼 흑자두 나무에서 꽃이 피어나고 벚꽃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는 좀 더 친밀한 시선으로 창가를 바라보게 되었다.

 가끔 특정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학생들이 있다. 신규 교사 시절엔 학생이 나를 고쳐줄 때가 생기면 아주 곤욕스럽다고 느꼈다. 하지만 요즘엔 자연스레 넘어간다. 아이들은 선생님에게서 배우고 나도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어쩌면 지금과 같은 정보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시대에 교학상장은 비로소 최적의 시기를 찾은 사자성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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