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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혼 Oct 24. 2021

부부의 시공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모던한 인테리어를 꿈꾸던 우리 집은 아들이 태어나면서 무참하게 파괴되었다. 큰돈을 들인 것은 아니었지만 집 전체에 통일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은 아기침대로 작은 공간을 차지하더니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집 전체를 자신의 영토로 만들어버렸다.


 타 지역까지 건너가서 구경하고 모셔온 가구들은 모서리 보호대가 덕지덕지 붙었고 소파나 의자들은 최소한의 숫자만 남기고 팔려가거나 베란다행을 당했다. 부부의 침대 또한 방수 패드가 깔린 가족 침대로 용도 변경이 승인되었다. 이제는 집의 어디에서도 부모가 아닌 모습으로 존재하기는 어려워졌다.


 유일하게 부부의 흔적이 남은 곳이 있다면 아내의 화장대와 작은 컴퓨터 책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곳들 마저도 아기가 사는 집이라고 단번에 알아맞힐 수 있는 물건이 하나 둘 놓여 있지만 그나마 이전의 집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그 두 곳은 우리 부부가 각자의 모습으로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화장대는 오로지 아내만을 위한 공간, 컴퓨터 책상은 오로지 나를 위한 공간이었다. 둘이서 앉기에 넓은 소파에서 일부러 다리를 뒤엉켜 있었던 시절에도 두 공간은 예외적으로 각자의 시간이 흐르는 곳이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다시 붙어서 몸의 일부가 맞닿아 있거나 마음이 맞닿아 있는 상태로 나머지 시간을 채웠지만 우리는 개인으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부부로 존재할 수 있는 그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삶을 대체적으로 행복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부부의 시간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아들을 위한 공간으로 변한 뒤에 부부의 시간은 농도가 옅어졌다. 서로를 부부보다는 부모로 인식하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각자의 공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제한되어 부부의 시간과 더불어 부모도 아닌 '너'와 '나'로써 존재할 수 있는 시간도 거의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직장의 어떤 직위로 존재하다가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가짐을 빠르게 갖추어야 했고 아들이 깊은 잠에 들기 전까지, 아니 잠들고서도 몇 시간이 지나기까지 부부로, 때론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부모가 된 부부의 시간은 그 전의 시간과 많이 다르다. 자주 못 본다고 애틋할 수 있던 연인 시절, 붙어 있어도 섭섭하던 부부만의 시절과 달리 같은 시간에서도 수많은 우선순위를 해결한 다음에야 각자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마음이 주어진다. 그리고 만나고 싶어 기다리던 약속시간이 아닌 하루의 모든 일과를 끝낸 뒤 불규칙적으로 툭 던져지는 부부의 시간이 되면 애틋함은 비슷할지 몰라도 심신은 지친 상태인 경우가 많다.


 어젯밤도 보채는 아들을 부부의 침대, 아니 가족의 침대에 눕히고서 양 쪽에 부부가 누은 뒤에야 부부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빡빡한 하루 일과를 끝낸 뒤에 침대에 누운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들이 깨지 않도록 속삭이거나 손을 뻗어 얼굴을 어루만지는 것뿐이었다. 서로를 응시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음미하고 서로 안아보는 일은 늘 그랬듯이 주말로 미뤄두었다.


 기다리던 주말이 되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하는 아들 때문에 하루가 길게 느껴지고 더 정신없는 하루가 된다. 가끔 부모님이 신경 써주시며 저녁이라도 먹고 오라고 아들을 봐주실 때가 되어서야 부부의 시간이 제대로 찾아온다.


 아내는 엄마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여자 친구의 얼굴, 아내의 얼굴을 한다. 집 안에 같이 있지만 화장실과 화장대를 오가는 아내의 발걸음이 불과 몇 분 전과 달리 가볍게 느껴지며, 덩달아 설레게 된다. 아내의 속눈썹이 조금 느리게 깜빡이는 것 같고 아내의 입꼬리에 미소가 조금 더 오래 머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평소 안 하던 차림새를 갖추고 우여곡절 끝에 집을 나서는 순간 부부의, 연인의 시공간이 펼쳐진다. 아들과 멀어지면서 집에서 짊어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나란히 선 아내만을 바라보고 또 생각한다. 늘 뒷자리에 앉던 아내가 조수석에 앉고 손을 슬그머니 깎지를 끼면 우리가 달려가는 모든 곳은 예전의 풍경으로 돌아간다.


 특별히 먼 곳으로 가지 않아도 두 사람만 존재하던 시절의 추억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부부는 지쳐 있고 늙었지만, 잠시나마 보정된 바깥세상과 서로를 만끽한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아들이 생각나겠지만 짧은 시간을 늘리고 늘려본다.


 아마도 앞으로 부부의 시공간은 점점 더 축소되고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나겠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부부의 시간은, 언제나 우리가 부모가 아닌 부부였던 또는 연인이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또 미약하게나마 쌓여가는 부부의 시간이 모여 부부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고 아쉬운 순간이 쌓여서 애틋함이 깊어질 것을 안다. 그리고 언젠가 아들이 떠나는 때가 되면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손잡고 걷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노부부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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