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생각

by 아직


현실이 된 만화

어릴 적에 만화영화를 떠올려 보면 자주 등장하던 상상의 요소들이 있다. 로봇, 투명망토, 하늘을 나는 차, 증강현실, 만능 패드. 지금은 현실화 되었거나 미래에 만들어지리라는 생각이 든다. 만화의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10-20년 전만 해도 '그런 날이 올까?', '저런 건 불가능해.'라는 생각이 싶었던 일들이다.



이 세상에 불가능한 것이 있을까?

인간이 가진 지식의 한계는 정해져 있다. 그 한계의 최대치는 사람들이 발견한 법칙, 학자들이 정립한 이론 등으로 정해진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고도의 기술이다. 새로운 발견과 이론 정립 및 활용을 통해 우리의 세계는 한걸음씩 도약하며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다. 그런 관점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지금 시대는 과거의 불가능이 현실화된 시대이다.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를 상상 속에서만 펼쳐 보았던 시대는 언제였을까. 그때는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모든 기술들의 고향은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불가능한 미지의 영역에 있던 것들이다.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기술들은 상상 불가능의 영역에서 상상 가능한 영역으로, 불가능의 영역에서 가능한 영역으로 나아가며 새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나름의 원리

투명망토가 개발됐다는 뉴스를 보고 놀라웠다. 그런 만화 같은, 마법적인 요소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게임이나 만화 속에 등장할 것 같던 상상의 아이템이 현실에 등장한 것이다. 당연히 마법이 아닌 자연법칙에 따라 나름의 원리가 적용되어 만들어졌다.

그런데 사실 그런 원리나 법칙이라는 것은 '이렇게 해 보니 저렇게 되고, 저렇게 해 보니 이렇게 되더라'라는 자연법칙들이 얽히고 섥힌 결과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법칙을 적용하는 건 인간의 영역이지만, 자연법칙은 이미 존재하는 영역이다. 내가 거울을 보면 거울에 내가 비치는 것은 우리 세계의 자연법칙이다. 그 나름의 원리가 있다. 하지만 꼭 나를 비추어야 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거울이라는 속성이 내 마음을 비춰서 나름의 원리에 의해 내 마음상태를 비출 수도 있다. 투명망토가 존재한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말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나름의 원리에 따라 가능해졌다.



잠재된 가능성

자연법칙은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이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정확히는, 우리가 알 수는 없다. 이 세계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투명망토와 같은, 상상에 속하는 것들은 자연법칙의 나름의 원리에 의해 실현될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다.

인간의 과학 기술이 고도화 되었지만 이는 인간적 관점에 불과하다. 우리가 현재 도달한 기술발전의 정도가 10단계 중에 1단계, 또는 100단계 중에 1단계일 수도 있다. 우리가 현재 기술수준이 높다고 생각하는 건 과거와 비교해서인 부분이 상당하며, 언제나 지금의 기술 발전의 수준이 최대치이자 한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세상에 어떤 것이든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생각의 진짜 의미는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생각은 정말 그러하고 아니고의 진실 너머에 더 의미가 있다. 우리의 차원에서는, 즉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그 영역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은 가능성의 영역을 축소하는 일이다.

반대로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은 가능성을 최대로 만든다. 실제로 가능한 모든 영역을 전부 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실현된 상상은 새로운 상상을 부른다. 즉, 잠재성을 모두 포용하며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거나 실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를 통해 내 일상의 관점이 달라진다.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나 인간, 세계에 대한 관점이 넓어진다.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어떤 식으로든 해결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해결 방안을 찾게 된다. 왜냐하면 해결 가능성에 초점을 두어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일에 대해서도 더 나은 방법이 존재하고 그것은 무엇일까에 초점을 맞추게 되므로 발전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멀티버스가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극단적 부정적/긍정적 위치에 있는 사람은 서로 다른 위치에 있었을 가능성을 떠올려 볼 수 있다. 타인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그렇게 세상에서 모인 하나하나에 포용력을 갖게 한다.

이런 일상적 관점의 변화는 내적 성장의 문을 일상적으로 두드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지속된다. 상상은 끝이 없고, 새로운 관점과 시각은 수시로 그 지평을 넓힐 기회를 얻는다. 그렇게 '나'는 내가 가진 내면의 무언가들을 끊임없이 깨트려, 나의 세상을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으며 그렇게 스스로를 완성할 수 있게 된다. 삶을 완성하는 것, 그것이 생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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