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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영 Jul 11. 2021

개인의 욕망을 희생하지 않을 권리

이기적인 집단의 재해석

배려심 많은 사람들과 일했다.

힘들 때 격려해주고, 기쁠 땐 함께 해줬다.
가족같이 서로를 배려하는 직장생활에 나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며 좋은 곳이라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곳에서의 경험이 별로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깨달음은 있었다.

혹시 시간 되세요? , 이것 좀 도와주실래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배려의 문화가 자리 잡혀 있는 조직에서는

더 자주 들을 수 있다. 서로 도와주는게 익숙한 나머지 개인의 업무가 집단 전체의 업무로 바뀌는 일도 많다. 도와주는 것이 익숙한 곳은 반대로 도움을 받는 것도 익숙해진다.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고' 이 말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내 모습에 밉지만 적어도 그곳에서의 나는 불편했다. 왜, 나는 배려가 불편했을까? 이타적인 집단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이타적인 집단에는 개인의 성과가 없다. 실제 개인에게 부여된 업무일지라도 공동의 업무로 바뀌는 것이 다반사다. 특히 배려라는 것이 한몫 하는데, 초반 회사가 자리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배려는 득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안정적으로 시스템이 자리 잡은 조직에게 오히려 배려는 개인의 성과를 흐릿하게 만든다. 그리고 흐려진 성과는 개인의 책임감을 축소시킨다.

축소된 성과와 책임은 직원들의 동기 부족으로 나타난다. 결국 잘해봐야 현상유지고 착하다는 소리만 듣는다.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학교에서 우리는 서로 돕는 것을 배운다. 뒤쳐지는 친구는 끌어주고 다른 학생보다 너무 앞선 것 같으면 기다리는 것이 미덕이다. 하지만 회사생활은 달랐다. 실패한 성적표는 결국 짤린다.


이기적인 집단이 있다. 이기적이라는 말은 본질적으로 부정적이다. 이기적인 행동이라 하면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기적인 집단의 요점은 '성과의 개인화'다.

앞서 말했듯 이타적 집단의 맹점은 '성과의 공용화'다. 성과의 개인화와 공용화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성과의 공용화가 두드러지는 집단의 특징은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는 직장일 확률이 높다. 반대로 성과의 개인화가 잘 이루어지는 집단의 경우 개인의 동기부여가 충분한 직장일 것이다. 성과의 개인화로 인한 동기부여는 개인의 욕망으로 발전된다. 그리고 지속되는 개인의 성과와 욕망은 심화된 업무수행력으로 발전한다. 욕망이 회사 발전의 연료가 되는 것이다. 실제 많은 회사에서 성과제를 통한 보상 혹은 사외 개인교육을 지원하며 이기적 집단의 행보를 걷고 있다. 회사의 성장을 위해 직원들의 욕망을 키우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회사는 결국 한 배를 탄 공동체이므로 같은 배에 이기적인 욕망들로 가득 찬다면 배가 산으로 갈지도 모르고 혹은 잦은 충돌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물론 배려의 문화가 두드러지는 집단일수록 충돌의 잡음은 없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의 배는 결국 집단의 종착지로 가는 것이 아닌 권력자의 종착지로 도착한다. 집단이라 포장하지만 결국 권력에 복종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물론 이기적인 집단의 종착지가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곪거나 썩지는  않는다.


민주주의는 개인 주의를 바탕으로 삼는다.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한 욕망을 추구할 자유를 무제한 인정한다.  

-유시민 '나의 한국 현대사' 60p-       


 물론 무조건적으로 이기적이게 살라는 글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제에서 평등과 공평을 위한 배려를 이유로 개인의 욕망을 희생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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