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메뉴의 팀워크
약수동은 서울이랍시고 조금 허름한 동네다. 그리고 새로움과 낡은 것들이 한데 얽히고설켜있기도 하다. 점심에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의 놀이터, 저녁에는 인근 대학교 학생들과 젊은 직장인들의 장소다. 상권분석 전문가인 송규봉 대표님의 말을 빌려 ‘상권은 생물이다.‘라는 의미를 가장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꼭 그것들을 시간으로 구분 지어 놓는 것이 큰 의미는 없다. 약수동 인근 ‘약수 순댓국’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인근 ‘리사르커피’에서 에스프레소를 먹는 코스를 보면 그렇다.
이북식찜닭은 지금 시점으로는 약수동의 장소성과는 특별한 연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일반적으로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음식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이야기는 조금 새로워진다. 간판 옆 소나무가 오랜 세월과 관련이 있다는 양, 가게와 인연이 깊다는 양, 고상하게도 잘 어울린다. 50년이 넘은 식당이라면, 시끄럽게 간판이나 현수막이 붙을 한데, 그렇지 않다.
특별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가게 내부다. 대를 이어오는 맛집에서 느껴지는 오래됨과 인덕션이 아이러니하게도 어울린다. 정체되어 있지 않는 가게라는 뜻이다.
이북식 음식이라 불리는 메뉴들이 있다. 메뉴판에 먹어보고 싶은 가짓수가 3개 이상이면 억울하기까지 하다. 결국 녹두빈대떡, 만두전골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기로.
이곳의 섞박지는 꽤 유명하다. 블로그에 종종 맛이 변했다, 맛이 전보다 못하다는 말은 돌지만. 미세하게라도 변하지 않았다면, 이곳이 지금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예전부터 이곳을 사랑하는 분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만, 가게는 사람과 비슷하다.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변한다.
찜닭이 특별할 것은 없다. 화려하지 않은 것이 매력이다. 투박해 보이지만, 뭐 하나 거슬리는 것이 없는 음식. 굳이 따지자면 닭고기와 같이 먹는 양념장이 재밌다. 겨자와 식초를 같이 섞어 먹으라 하는데, 닭고기를 화사하게 만들어준다. 같이 올라가는 부추와 함께하니 더욱 좋다. 맛집의 음식들은 훌륭한 축구팀 같다. 공격수는 골을 넣는 것에 집중해야 하고, 수비수는 공을 뺏는데, 골키퍼는 막는데 집중한다. 각 메뉴들이 하나의 팀이다. 뛰어난 기술보단 시간이 주는 마법 같은 ‘팀워크’다.
보기만 해도 든든해지는 만두, 생각보다 오밀조밀 다져져 있는 다양한 재료들에, 무슨 재료가 들어가 있는지 가늠도 안될 정도. 특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잘 어우러져 굳이 찾을 이유가 없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속이 꽉 찼다.’라는 말이 진중한 그 누군가에게 쓰는 관용표현이라면, 이곳의 만두도 그러하다.
막국수는 달큼한 맛이 먼저 튀어나오는데, 같이 나오는 식초와 겨자를 넣어먹지 않고 싶은 오기가 발동한다. 알아보고 싶은 음식점은 그냥 그 메뉴를 만든 사람의 의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은 법. 육수에 닭육수를 사용하는가? 구수한 향이 매력적이다. 다른 메뉴들을 먹어보러 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