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식을 위한 변명’을 읽고
본문에 앞서 잠깐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한식에 관심이 많은 요리사다. 특히 한식문화에 대한 이야기, 글을 좋아하는데 공부해 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사실 조금 재미없다. 한식문화 자체가 재미없다기보단 한식문화를 설명하는 매체들이 재미없다. 지루하고 따분하다. 개인차는 존재하겠지만 관심 있는 사람이 읽어도 재미없다. 문화는 시대를 풍미하던 유행 혹은 습관이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선택받아 지속적으로 유지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식문화를 소개하는 매체들은 대부분 재미없다. 그마저도 재밌는 매체들은 한식문화보다는 한국음식에 집중한 느낌이다. 물론 당연하다. 매체는 대중적 자극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중적이지 않았던 한식문화는 오랜 시간 소수의 기성인들이 설명했고 해석해야만 했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식을 위한 변명’이라는 책이 반갑다. 물론 이 책의 모든 부분을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식문화를 재밌게 공부할 수 있는 책 임에는 분명하다. 한식을 꼭 지루하게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니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기성인들에게 한식은 가지고 놀기 좋다. 부정하려 하지만 사실이다. 개인적인 생각이 일반화되기 쉬웠고 별 것 아닌 것에 의미 부여하기 딱 좋았다. 또 잘못된 것을 알지만 그것을 굳이 고치려들 지도 않는다. 이게 현실이다. 남에게 미룬다. 잘못된 의미는 자꾸 생산되는데 고치려는 노력은 반도 되지 않는다. 한식은 애국을 넘어 성스러워지고 있다. 중국에서 넘어온 당면(이름에서부터 ‘당’ 면이다.)이 주재료가 된 한국 잡채, 사실이 무엇인지는 관심 없다. 그냥 소비자에게 잡채는 전통 한식이다. 그럴싸한 마케팅으로 한국스러움을 두르면 한식이 된다. 본 책에서 는 현재 사찰음식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낸다. 사찰음식의 본질을 파악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최근 한식의 채식 위주의 식단이 외국인들에게 소개되며 자연스레 한국의 사찰음식이 주목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기회는 이때다 하고 사찰음식은 그럴싸한 마케팅의 갑옷을 입고 변형된다. 사찰음식이 화려해진다. 데코레이션과 담는 그릇에 신경을 쓴다. 사찰음식의 본질은 뒷전이 된다.
사찰 음식은 사찰음식만의 정신이 있다. 겉이 아니라 속이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볼일이다. 손가락 끝을 볼 일이 아니다. 사찰음식은 더하는 음식이 아니라 빼는 음식이다...(중략) 부정주의 다.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고 인위의 노력을 더 하지 않는다. ‘하는’ 것이 아닌 ‘하지 않는’ 것이다. 할 줄 알지만 스스로 멈추는 것이다. (한식을 위한 변명 p57)
물론 한국음식 자체를 놓고 보면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한식문화 측면에서 큰 문제가 된다. 한식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속뜻을 헤아리지 않고 세계로 유통되는 음식들이 문제다. 김밥, 잡채, 떡볶이 등등, 이 음식들이 진짜 한식문화를 보여주긴 하는 걸까? 의문이다.
궁중음식과 전통 한식의 대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안순환 대령숙수, 한희순 상궁이다. 책은 이들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증거 하며 지금 한식의 일부가 가짜라고 한다. 물론 내용상 논리와 주장에 대한 자료가 분명하지만 섣부른 판단을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어느 정도 반영되어야 할 내용들은 분명히 있는 듯하다. 역사는 힘 있는 자가 기록한다. 사실을 기록하지만 그 사실이 주관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의 주장은 설득력 있다. 옛 문헌의 기록이 중요한 이유다. 옛것을 들여다보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누군가 해석한 자료가 아닌 진짜의 것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역사는 사실 이어야 한다.
우리가 만나는 ‘지금의 한식’은 일본풍이다. 일제강점기 36년과 그 후에도 오랫동안 일제, 일본의 영향을 받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 불행히도, 근대화 과정의 서양 문물도 일본을 통해 받아들였다. 일제의 잔재는 상상 이상으로 많이 남았다. (한식을 위한 변명 p174)
가끔 한식은 뭐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 질문은 잘못됐다. 정확하게 한국음식과 한식문화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먹고 있는 대중음식(서민음식)의 대부분은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생각보다 일본의 것이 우리에게 침투해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뒤죽박죽 섞여있는 것들을 빼자니 남는 음식이 없다.
이미 섞여버린 노른자와 흰자를 완전하게 분리하기는 어렵지만 그 섞인 달걀로 무엇을 만들지는 우리만의 것이다. 이미 뒤죽박죽 되어버린 한국음식의 방향을 우리가 정하면된다. 그래서 한식문화는 정확하게 한국음식과 분리해서 연구되고 생각되어야 한다. 뉴코리안, 퓨전 한식 등 현대의 시각을 가진 한국음식은 존중하고 한식문화는 우리만의 것으로 엄격하고 정확하게 연구해야 한다. 과거의 한식문화를 공부하되 한국음식은 현재와 맞춰야 한다. 과거를 공부하되 눈은 현재를 봐야 한다.
변명의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이다.
1. 어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하여 구실을 대며 그 까닭을 말함
2. 옳고 그름을 가려 사리를 밝힘
이 책은 비겁한 변명의 1. 의 변명이 아니었다. 옳고 그름을 가려 사리를 밝히는 2. 의 변명이다. 진짜 좋은 제목은 글을 다 읽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제대로 변명했다. 앞서 밝혔듯이 이 모든 주장을 전부 동의하지는 않는다. 작가, 평론가, 기자는 흠 없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중으로 하여금 문제의식을 고취하며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사람들이다. 책 ‘한식을 위한 변명’을 비교적 오래 읽었다.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재미있어서 오래 걸렸다. 생각할 시간을 선물해준 작가님께 감사하며 글을 마친다.
이미 섞여버린 노른자와 흰자를 완전하게 분리하기는 어렵지만 그 섞인 달걀로 무엇을 만들지는 우리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