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 '한식의 품격'을 읽고
“한식, 칭찬보다 정성스러운 비판이 필요한 때.”
한식은 분명 매력적인 식문화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음식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사실 문화 자체를 비교하는 것이 말은 되지 않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한식에 대한 칭찬은 이만하고 지금부터 한식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책 ‘한식의 품격’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먼저 작가 소개를 하겠다. 평론가 이용재, 한국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아 공과대학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건축학도이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음식평론을 하게 되었다. 전공이 원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맛의 균형과 기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고 불편하게 말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 본문의 내용을 가져왔다.
‘전문가적 손길도 사실 필요 없다. 어차피 모두가 ‘법카’와 회식을 통해 갈고닦은 솜씨로 직화구이의 전문가라 자처하는 현실 아닌가. 접객 비용을 차라리 고기에 포함시키는 편이 낫다고 할 것이다. 계속 그렇게 먹으니 스스로가 고기구이를 잘 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거든다. 이런 환경 속에서 고기는 타 들어간다. 불판에서 입으로, 휴식 없이 직행한다. 질기고 뜨겁지만 괜찮다. 소주로 식힐 수 있다. 씹다 만 고기가 소주를 타고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표정까지 좀 과장스레 찡그려야 제 맛이다. 그래야 낭비하는 맛이 난다. 프로메테우스가 애써 훔쳐 다 준 불을 낭비하는 바로 그 맛이다.’
느꼈는가? 내가 작가 소개를 먼저 한 이유를? 한식을 넘어 한국인까지 비판하는 불편한 책이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이 바로 평양냉면이다. 그는 평양냉면의 고기육수를 ‘차와 포를 뗀 고기 국물’이라고 한다. 이유는 젤라틴과 감칠맛 때문이다. 일반적인 높은 온도의 국물들은 젤라틴을 위해 콜라겐이 많은 결합조직이 많은 부위를 이용한다. 하지만 낮은 온도에서 굳어버리는 성질로 인해 젤라틴을 제대로 용출시키지 못한다. 지방도 역시 낮은 온도에서는 쉽게 굳어버리니 지방이 많은 부위도 쉽게 사용이 불가능하다. 맞는 말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안이라 하면 화학조미료뿐인데 이 마저도 피하려 한다. 결국 우리가 먹는 평양냉면은 맛이 없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는 그의 말 대로 국수를 맹물에 담가 먹었고, 한식의 정서적 접근은 있지도 않은 ‘슴슴’ 한 맛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맛있는 음식은 짠맛, 단맛, 신맛, 쓴맛, 감칠맛의 균형이 잡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한식은 이미 단맛과 매운맛에 모든 맛을 희생당했다. 원인은 저염 정책 때문이다. 짠맛은 사실 모든 맛을 조화롭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책임지고 있는데, 사실도 불분명한 채 주장된 저염 정책이 한식의 짠맛을 없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단맛이 우리의 한식을 차지해버렸다. 단맛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쉽게 물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겨움은 매운맛이 대신한다. 사실 매운맛은 맛이 아니다. 통각이다. 단맛의 질림을 매움으로 때린 충격의 맛이 지금의 한식이다. 짠맛의 부정적 인식을 극복하고 개선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한식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이와 같이 책 속에서 한식을 이성적으로 분석한 사례들을 찾을 수 있다.
미쳤다. 한식을 증오하자고 마음먹지 않고서 쓰기 힘든 글이다. 그의 주장은 다소 불편하지만 상당히 타당한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는 실력자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그가 한국음식 자체를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비판은 가치의 판단이다. 그는 일반인보다 더 넓고 깊숙이 아는 음식평론가이다. 평론가는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여 줘야 하고 비판할 거리가 있다면 소신을 숨기지 말고 표현해야 한다. 우리도 이미 안다. 한식이 체계적이지 않으며 심지어는 정체성의 기준조차 없다는 것을. 한식의 세계화라는 거창한 프레 임안에 불고기, 김밥, 비빔밥은 갈 곳을 잃었다. 그 누구도 돌을 맞아가며 한식이 틀렸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한식은 틀렸다고 말한다. 나도 이 책의 모든 부분을 수긍하지는 않는다. 한국인의 정서를 빼고 한식을 말하는 것도 의아하다. 하지만 지금 한식은 애국심을 무기로 판치는 칭찬이 아닌 정성스러운 비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