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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Nov 02. 2019

부채공장 딸하고 여행을 갔다.

우리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었다.

지난해 11월, 예정에 없던 휴가가 생겼다. 엄마와 나 인규, 셋이 기차를 타고 부산 여행을 떠났다. 부산은 엄마 고향이다. 정확히는 '엄마 고향으로 알고 있다'. 나한테는 외삼촌이 사는 곳, 내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사셨는 곳이었으니, 그냥 엄마 고향 정도로 알고 있었다. 엄마는 어릴 적 얘기를 잘 안 하신다. 잘 안 하셔서, 그냥 잘 모르고 살았다.


지난해 11월. 노모와 일에 찌든 30대 여성, 3돌 남아가 부산 여행을 갔다.


부산역에 내려 숙소가 있는 해운대로 가는 택시를 탔는데, 아저씨가 동네 분이 내려왔다가 반가워하셨다. 연배가 엄마와 비슷해 보였다. 그런데 엄마가 동네 얘기를 하다 대뜸 "그럼 부채공장 아시겠네요"하더니, "제가 그 집 딸이에요."라는 거다. 내가 "아니, 부채가게가 한두 개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아시겠어"라며 핀잔을 줬다. 엄마는 "이 동네 출신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라고 했고, 아저씨는 대충 맞춰주는 답을 해주셨던 거 같다.


'내가 그 집 딸이에요'.


할아버지가 부채 공장을 했는지도 몰랐지만, 일단 엄마가 이런 말을 한 것 자체가 놀라웠다. 그간 내가 아는 엄마는 아무한테나 대뜸 민망한 자랑을 꺼내시긴 했지만 그건 늘 자식 얘기였다. '얘가, 방송국 다녀요', '얘가 기자예요'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집 딸이에요' 라니. 스스로를 자랑하는 말 자체를 처음 들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말을 할 때 우리 엄마 눈빛이 반짝였다. 분명 그랬다. 우리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었던 거다.


나는 태어나서 외할아버지를 딱 한 번 봤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던 거 같다. 외할아버지가 동네로 찾아왔는데 집으로 모셨는지, 길거리에서 인사만 나눴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저 사람이 외할어버지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만 얼핏 남아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장례식장에도 가지 않았다.  


외할아버지 사진은 한 장 있었다. 말 위에 타고 있는 근사한 젊은 남자 사진이었다. 근사하다는 게, 정말 잘생겼었다. 쌍꺼풀 없는 날렵한 눈이 (송구스러운 표현이지만) 여자 꽤나 울렸을 것 같은 외모였다. 그게 문제였다. 외할아버지는 정말 여자들을 '계속' 울렸다. '당구가 3000(!)이었다'는 다소 과장된 전설도 전해 들었다. 한량이어서, 돈을 많이 벌었지만 많이 까먹었고, 새 장가를 들어 가족들을 버리다시피 했다고 들었다. 이게 내가 아는 외할아버지의 전부였다. 정확히는 '엄마가 알려준' 이야기 전부였다.


알고 보니 외할아버지는 부산 남부민동이란 곳에서 요즘 기준으로 보면 'PR업체'를 운영하셨단다. 달력, 부채였다. 광고를 인쇄한 부채공장을 운영해서 꽤나 돈을 모으셨나 보다. 그래서 인쇄업으로 사업을 키우셨는데 그 뒤부터 잘 안됐다고 한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자 외할머니는 두 딸과 막내아들을 데리고 경남 하동에 있는 시댁으로 갔다고 한다. 친정집도 하동이었다고. 하동에서 살림살이는 나쁘지 않았는데 첫째 딸, 그러니까 울 엄마의 큰언니가 중학교에 갈 때쯤 되니, 외할머니는 애들을 아빠한테 보냈다고 한다. 부산에서 교육을 시킬 요량이 컸던 거 같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헷갈리는데, 울 엄마는 두고 첫째 딸과 막내아들만 부산 남편한테 보냈다가, 첫째 딸이 엄마랑 살고 싶다며 도망쳐 나왔고, 둘째 딸과 막내아들만 다시 아빠한테 갔다고 한 거 같다. 그렇게 오고 가는 사이 우여곡절도 많았다는데, 대충 들어도 드라마 소재였다. 이 모든 이야기는 최근, 이모한테 들었다. 이모는 60년 전 이야기를 전하면서 '네 엄마가 그런 환경만 아니었어도. 너처럼은 됐을 거야'라고 하셨다. 가슴팍이 알알했다.  


엄마는 끝끝내 이런 얘기를 하지 않으셨다. 내가 단서를 잡고 물어도, '고생한 얘기 하기 싫다'면서 '묻지 마'라고만 하셨다. 그런데 내가 엄마를 더 이해하려면. '우리 엄마는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됐을까'. '우리 엄마랑 이모는 자매인데 어쩜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 같을까'. 그래서 그 엄마의 딸로 큰 나 자신을 더 이해하려면. 엄마의 뿌리를 알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걸, 인규를 키우다가 알게 됐다. 나는 인규의 뿌리다. 그리고 배영옥, 우리 엄마가 내 뿌리다.


엄마가 이 글을 싫어할지 모른단 게 마음에 걸리지만. 조금 더 엄마의 이야기를 파고들어볼 생각이다. 이모한테 전해 들은 짧은 이야기 속에서 벌써 새로운 캐릭터도 발견해냈다. 배영옥의 엄마, 외할머니 이야기다. 나는 엄마를 기록하고 싶어서 이 글을 시작했는데, 어쩌면 외할머니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촉'이 온다. 이 멋진 여성들을 잘 기록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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