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달' 작가의 새 그림책이 나왔다. 내가 그림책에 빠지게 된 첫 책 <수박수영장> 작가다. <할머니의 여름휴가>도 너무 좋았고, <왜냐면>도 명작이고. 장편 그림책 <안녕>은... 서점에서 서서 읽다가 눈물 나서 혼났다. 안녕달의 그림이 담긴 책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는 인규도 참 좋아한다. 휴일 출근을 나갈 때나 출장 가기 전, '인규야,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라고 말해주면 인규가 씨익, 웃는다.
새 그림책 제목은 <쓰레기통 요정>. 보석 반지를 얼굴에 두른 쓰레기통 요정이 사람들 소원을 들어주는데, 쓰레기통을 뒤져서 해주려니 여의치 않다. 그래도, 소원이 이뤄졌을 때 행복해하는 사람의 표정을 본 요정은, 어떻게든 소원을 들어준다. 자기 꺼를 내주면서까지.
안녕달 작가 <쓰레기통 요정>
인규랑 침대에 누워 새 책을 펼쳤는데, '소원을~ 들어드립니다~' 부분에서 우스꽝스럽게 따라 했더니, 인규가 무척 좋아했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 없이(?) 읽었는데 아차차... 쓰레기통 요정이 한 할아버지를 위해 자기 반지를 빼서 내준다. 동작을 멈춘 인규가 갑자기 '엄마, 나 울 것 같아'라고 하고 나를 쳐다본다. 본능적으로 먼저 '슬픔'을 느낀 다음 어째야 할지 몰라 나를 쳐다본다. 그런데... 나도 이미 눈이 빨갛게 돼 있었다. 인규가 펑펑 울기 시작한다. "안 줬으면 좋았을걸" 이라면서.
인규는 더 애기 때부터 영화나 책을 보고 자주 '펑펑' 울었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이 아이는, 대체 뭘 어디까지 이해하고 이렇게 슬퍼하는 걸까 궁금했다. 생각해보면. 나랑 감정선을 맞춘 것 같기도 하다. 나 역시, 인규가 울던 모든 순간 슬펐으니까. 아주 가느다란 내 감정이나 분위기까지. 인규는 정말 모든 걸 흡수한다. 아이들은 정말 모든 걸 흡수한다. 나 역시 그랬다. 집안 분위기를 흡수했다. 엄마 아빠가 심하게 싸울 때의 그 차갑고 불편한 공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어쩔 줄 몰랐고, 불안했다. 무서웠다.
출산휴가 때 집안일을 하기 힘들어서 일주일에 한 번, 사람을 불렀다. 한번은, 건너 건너 소개받은 동네 분이 오셨는데, 집 청소를 끝내고 나서 보니 베란다 나무들이 댕강, 잘라져 있었다. 파란 잎이 없는 나무는 대체로 다 잘려나갔다. 가장 충격적인 건 꽤 굵직한 블루베리 나무였다. 다듬은 게 아니라 댕강, 흙 위로 나온 몸통 시작 부분을 정말이지 '댕강' 잘라버렸다. '소소'란 이름으로 두해째 우리 집에서 겨울을 나고 있었던 나무였다. 블루베리는 겨울에 잎을 다 떨구는데, 그래서 죽은 나무인 줄 알았단다. 불과 반년 전 여름, 내가 붓을 들고 벌로 '빙의'해서 꽃가루를 옮겨준 나무였는데...
집안일을 맡아준 그 이모님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각이 나와 다른 거였다. 내 입장에서는 설사 죽은 나무라 한들, 생명을 그렇게 쉽게 '댕강'해버릴 수 있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반면, 그 이모님은 '왜, 비싼 거예요?'라고 물었다.
나는, 나무를 정성껏 가꾸고, 꽃 한 송이도 소중히 여기는 엄마 밑에서 자랐다. 다른 사람 불편하게 만드느니 '내가 힘들고 만다'는 엄마 밑에서 자랐다. 그런 집안 분위기를 온몸으로 흡수하고 자랐다. 그 결과, 남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내 성격이 맘에 안들 때도 많지만. 예민하게 타인의 감정을 읽고 그것 때문에 자주 힘들어하지만. 그렇게 컸다. 눈치 빠르고 내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인규를 보면서 아차 싶을 때가 있다. 그런 아이로 키우고 싶어서, 의도를 넣어서 뭔가를 한 게 아닌데. 인규는 내 아들로 태어나서 나랑 같이 살면서 그냥 그런 사람으로 크고 있었다. 우리 엄마도, 엄마가 그런 사람이었겠구나 싶다.
인규가 그런 마음 때문에 힘들 때가 있겠지. 내가, 지금도 힘들 때가 있는 것처럼. 그래도 나는 배영옥 딸로 커서 좋았다. 인규도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