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로 기억하는데. 급식이 없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첫째, 둘째, 셋째의 도시락을 매일 준비했다. (와... 생각해보니 이것만 해도 이미 경이롭다. 매일 도시락 준비라니...) 무튼, 한 번은 도시락을 열었더니 볶음밥이었다. 맛있게 먹었는데 집에 와서 어찌어찌 알게 된 게, 엄마가 나만 볶음밥을 싸준 거였다. 언니들한테 좀 숨기고 싶었다. 정확히는 '내가 니들보다 얼마나 특별한 대우를 받는지' 언니들한테는 숨기고 싶었다. 아, 알게 되면 얕은 마음으로 질투하겠지. 그런데 그거 알아? 이 막내딸은 늘 특별 대우야, 이 언니들아~!
그런데 한참 나중에 엄마한테 그 얘기를 꺼냈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엄마는 그날 언니들한테 따뜻한 밥에 반찬을 싸준 다음. 밥이 모자르자 급히 찬밥으로 볶은밥을 만들어 막내 도시락을 채운 거였다.
지난주 볼음도에 놀러 가서 두런두런 얘기를 하는데 마짱(우동사 식구들이 부르는 우리 엄마 애칭) 얘기가 나왔다. 마짱이 왜 특별한 사람인가 얘기하다가, 둘째 언니가 말했다.
"셋이 커서 얘기하다가 알았잖아. 셋 다 엄마가 자기를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더라고."
내가 '우리가 그런 얘기를 했었나?' 하면서 신기해했는데. 사실 그때 가장 신기한 건 따로 있었다.
"엥? 둘째 언니는 그럼, 엄마가 언니를 젤 좋아한다고 생각해?"
농담처럼 들렸을지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놀랐다. 나는 언니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놀라웠다. '미안하지만, 엄마는 나를 제일 좋아해.'라는 생각 자체를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36살에 깨닫다니. 나는 이렇게 또 엄마한테 속고 있었구나. 엄마는 나를 제일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럴 수가!
배영옥 딸 셋.
아직도 나는 수많은 증거를 댈 수 있다. 딸 셋 중 내가 가장 사랑받았다는 증거. 고3 때 '힐리스'라는 바퀴 달린 운동화가 처음 생겼는데(세븐이 타기 전이었다. 그땐 세련되고 신박한 얼리어덥터 아이템이었다), 내가 도서관 갈 때 그걸 타고 다니고 싶다고 했다. 여고 고3. 클 만큼 컸고. 생필품도 아닌 그런 걸, 평소 뭘 사달라 하지도 않는데 나는 굳이 그걸 갖고 싶다고 했다. 교회 갔다 도서관 갔다 하는 지루한 삶에 뭔가 금을 내고 싶었던 거 같다. 그런데 엄마가 한번 더 묻지도 않고 사주셨던 기억이 있다. 생계 최전선에 나서 힘겨운 육체노동과 끝나지 않는 가사노동을 모두 하고 계셨을 때다. 꽤 비싼 가격이었는데 계산대에서 계산하던 순간, 그 한 장면이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걸 그렇게 기억하는 걸 보니. 엄마한테 엄청 미안했던 거 같다. 그런데 묻지도 않고 누가 봐도 '없어도 될 거'같은 그 물건을 사주셨다. (그 없어도 될 거 같은 물건을 타다 결국 내리막길에서 교복을 입은 채 3바퀴 반을 굴렀고 그 뒤로 창고에 처박혔다...) 그건 분명, 나를 사랑해서였다.
늘 나를 신뢰하고 계시단 것도 나한테는 뚜렷한 증거다. 나한테는 '공부해라' 말씀하신 적도 없다. 고등학교 시절 한참 딴짓(!)에 빠졌던 적이 있는데. 어딜 가냐, 뭐 하냐 한적도 없으시다. 그냥 '배우는 게 있어요, 배우고 있어요' 하면 오케이였다. 큰언니는 고등학교 때 공부하라고 머리카락을 쥐고(!) 혼내셨던 거 같은데. (그 뒤로 그런 무서운 교육은 접으셨다.) 나는 특별대우를 받고 있었고 늘 특별히 더 사랑받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는 큰언니한테도, 둘째 언니한테도 '그런' 사랑을 쏟으신 거였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지금도. 나한테 미안해하면서 큰언니를 도우러 가고. 둘째 언니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좋아하면서도 늘 힘들게 살까 봐 전전긍긍하고. 분명 나름의 계획이 있으셨을 텐데 내가 금요일 밤에 '나 낼 근무야' 하면 '당연하지, 내가 가지. 걱정 마'라고 하신다. 그렇게 세 딸에게 3분의 1이 아닌 세 배의 사랑을 쏟느라 엄마는 늘 고단했다. 고단하다.
충분히 사랑받고 자란 사람한테서는 손댈 수 없는 건강함이 있다. 그렇게 사랑받고 큰 사람은 아무리 멀리 가도 '선'을 넘지 않는다. 그게 내가 커온 방식이고, 인규를 키우고 싶은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