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엄마, 인규와 셋이 일본 미에현에 있는 '스즈카'에 다녀왔다. 언니네 부부가 석 달째 유학(?)하고 있는 <에즈원 커뮤니티>가 있는 곳이다.
나는 구정 연휴에 근무가 없다는 '기적'을 확인하고, 어디든 놀러 가고 싶었다. 극성수기, 마침 나고야행 티켓만 남아있었다. (물론 가격은 어마어마했지만... 하아...) 원래 내 구상은 레고랜드도 가고, 나고야항 수족관도 가고, 그 맛있다는 팥 토스트도 먹고 장어덮밥도 먹고... 엄마도 이런 계획에, 겉으로는 '찬동'해주셨지만. 나는 적어도 20년 동안, 엄마의 '속마음'을 읽는데 단련돼 왔다. (우리 엄마는 늘 본인 욕구는 꾸역꾸역 감추신다. 다만 눈빛이 흔들릴 뿐...) 엄마는 언니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고 마침 언니가 있는 스즈카는 나고야 인근에 있었다. 엄마는 언니가 '굶고 있는 건 아닌지, 뭘 어떻게 하고 먹고 사는지' 궁금해하셨다. 이 김에 '에즈원 커뮤니티'를 경험해보라는 언니 권유를 '놀고 싶다'며 뿌리치기도 그랬다. 그렇게 스즈카에 갔다.
궁금하긴 했다. 언니가 스즈카만 가면 일주일 씩 열흘 씩 '프로그램에 들어간다'며 연락을 끊었다. 뭐지? 종교 같은 건가? 의심부터 들었다. 게다가 자본주의에 찌들어 사는 나 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석 달을 일을 안 하고 거기서 뭘 어떻게 산다는 건지, 누가 대체 왜 재워주고 먹여주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동생인 내가 이정도인데 엄마는 오죽했을까. 엄마는 종종 나를 붙잡고 '언니한테 연락해 봐라, 형부한테 연락해 봐라,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봐라, 걔들은 대체 왜 그러고 사는 거니' 하소연을 하셨다. 내 대답은 늘 같았다. "엄마. 우리 중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야." 엄마는 이 말 뜻을 잘 알고 계신다. 그럼에도 한 번씩 '속 터져' 했고. 그럴 때마다 나한테 '언니 삶이 얼마나 멋진지' 확인받고 싶어 하셨다.
에즈원 커뮤니티에는 '어른들'이 계셨다. 물론 젊은 구성원들도 많았지만 커뮤니티가 꾸려진 지 20년쯤이 지나다 보니, 핵심 구성원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셨다.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그분들이 얼마나 매력적인 분들인지 만나자마자 '그냥' 보였다. 정성껏 준비해준 잠자리와 밥상. 짧았지만 집중적인 커뮤니티 소개. 진지한 답변. 재치와 여유까지. 그런 어른들과 가까이서 지내며 충실하게 배우고 있는 언니 가족이 부러웠다.
* 에즈원 커뮤니티
스즈카 지역을 중심으로 백여 가구가 관계를 맺고 사는 공동체. 인간과 사회의 본성을 연구하는 '사이엔즈 스쿨'이 인상적이었다. 정리가 잘 된 페이지가 있어서 URL 첨부.
커뮤니티 소개 세미나를 듣고. '커뮤니티 적정 인원'에 대한 질문을 했다. 지금 에즈원이 핵심 구성원 50여 명에, 조금 느슨하게 범위를 잡으면 100가구 이상이 연결돼 있는 건데. 20년 동안 공동체를 꾸린 결과, 그 정도 숫자가 '적절하다'는 결론이 난 건지 궁금했다. 에즈원 이전부터 공동체를 꾸렸다고 하니 적어도 40년에 가까운 경험이 축적됐을 터였다. 인원이 많아지면 갈등도 많아질 터이니, 그렇게 숫자를 조정한 걸까 궁금했다. 아니면 더 이상 확장성이 없다는 해석도 가능했다.
그런데 답변을 주신 나카이상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고개를 갸우뚱, "글쎄 그게.... 지금 우리가 몇 명이지?"라고 말했다. 핵심 구성원이자 리더 그룹에 가까운 할아버지는 애초에 '숫자', '규모' 이런 걸 고려해본 적이 없는 거였다. 뭐든지 숫자와 규모부터 파악하고, 거기서 '가치'를 평가하는 내 기존 습성으로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답이었다. 사실 '질문'과 '답변'의 개념도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내가 뭘 물으면 완성된 답을 내는 게 아니라, 한번 더 생각해보고, 같이 생각해보자 하는 식이었다. 머리가 굳은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엄마는 '어려웠다'고 하셨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고. 그래도 우리 엄마답게, 엄마는 푹 빠져서 듣고, 살폈다. 다만 옆에서 보는 나는 내내 안타까웠다. 우리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가족을 버린 순간부터 늘 너무 힘들게 살았다. 누구보다 열린 사람인데, 생각도 깊고 가능성도 무궁무진한 사람인데. 늘 힘들게 살면서 각인된 빡빡한 삶의 방식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셨다. 한 예로, 에즈원 커뮤니티는 핵심 구성원 50명이 '한 지갑'을 쓰는데 그걸 이해하기 힘들어하셨다. ('한 지갑을 쓴다'는 건 상징적 의미. 이들의 경제 공동체 개념은 기회가 되면 다시 전달해보고 싶다.) 늘 아등바등 살아야 딸 셋을 거뒀는데, 소유의 개념이 흐려지고 공유가 일상화된 그런 삶을 받아들이기 어려우셨던 터다.
그렇게 스즈카를 다녀왔고, 엄마는 여전히 '언니한테 전화 좀 해봐'라고 하신다. 인천에서 '우동사 커뮤니티'를 꾸려 살고 있는 언니의 삶을 여전히 존중하면서 여전히 불안해하신다. 엄마에게만 유난히 불친절한 막내딸은 "고만 좀 하소!"라고 투덜거리지만. 그 마음 또한 이해가 된다. 그게 지금 '배영옥 마음'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