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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Nov 30. 2019

이제 이해'는' 합니다.

아직 달리지'진' 못했지만요.

"미래안 뒤로 보이는 메리앙 아파트, 그 옆 길목으로 들어오면 돼. 영어로 쓰여있는 곳으로 와~"


대략 15년 전쯤, 이모네 집을 찾아가려는데 엄마가 '저렇게 저렇게 오면 된다'면서 알려준 내용이다. 막상 가보니 '래미안' 아파트 뒤 '월드메르디앙' 옆 '아이파크'였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우리 엄마는 내 이름을 부를 때 큰언니 이름 불렀다, 둘째 불렀다, 다시 나를 부른다. 사위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 '김서방 아니 조서방 아니 곽 서방!'이라고 하신다. 사실 큰언니 이름으로 나를 불러도, 내가 적당히 알아들음 되지만. 그냥 그게 싫어서 매번 내 이름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그런다, 또 그래'라고 굳이 덧댄다.  


6년 전 엄마랑 둘이 터키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엄마가 매번 음식을 흘리는 걸 보고 (또) 잔소리를 늘어놨다. '아니, 그걸 왜 흘려. 단단히 좀 먹지. 왜 매번 그래' 이런 식. 그때 엄마가 '나이 먹어서 그래'라고 했는데. 그게 진짜 어떤 의미인지는 최근에야 알게 됐다. '아까 밥 먹음 초콜릿 3개 준다고 했는데 왜 두 개밖에 안 줘'라며 따박따박 따지는 인규는, 그렇게 따박따박 따져 물을 만큼 컸는데도, 아직도 숟가락질을 어려워한다. 자기 먹던 뭔가를 떠서 내 입에 넣어준다고 할 때, 정작 내 입까지 도착한 숟가락에는 남아있는 게 거의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숟가락질,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거다. '나는 받은 거 없이 혼자 잘 컸다'라고 따박따박 말하는 젊은 '나'는. 어릴 때 숟가락질이 어려웠던 기억 따윈 이제 남아있는 게 없고, 아직 손가락에 힘이 떨어질 만큼 늙지는 않았기 때문에, 숟가락질이 그렇게 어려운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다.


엄마가 '김서방, 조서방 아니 곽 서방'이라고 하는 것도. 래미안을 미래안이라고 부른 것도. 야무지지 않아서, 정신을 놓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나이 드셔서 그런 거였다. 숟가락질이 어렵단 걸 애를 키우면서 깨닫게 되고. 나도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들어 부쩍 단어 하나가, 사람 이름이 안 떠오르게 되니까. 그제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살찌는 것도 마찬가지. 나는 지금까지 엄마가 '자기 관리를 안 해서' 살이 쪘다고 생각했다. 엄마=아줌마=자기관리 안 하고 신경 안 씀, 남은 음식을 미련하게 다 먹음=살이 찜.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 (적고 보니 굉장히 폭력적인 사고방식이다...) 근데 최근에 살이 쪄가는 나 자신을 매우 당혹스럽게 보면서, 엄마를 떠올렸다. 20대 땐 많이 먹든 적게 먹든 몸무게가 늘 같았다. 일단 살이 잘 찌지 않았고, 좀 찌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 체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임신하면서 몸무게 앞자리가 2번 바뀌는 일을 경험한 뒤, 몸이 아예 달라졌다. 내가 유난히 더 먹는 거 같지 않은데 계속 체중이 늘고, 당황해서 음식을 줄였는데도 뭄무게는 줄지 않는다. 너무 쉽게 살이 붙는다. 이제 악을 쓰고 운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온 거다. 우리 엄마는 게을러서, 자기 관리를 안 해서 살이 찐 게 아니었다. 우리 엄마는 임신과 출산을 3번이나 겪었고, 악을 쓰고 운동하는 대신, 악을 쓰고 딸 셋을 키웠다.


'나가는 길에 지하철역에 내려달라'고, 급하게 나를 쫓아 나오시는 엄마가, 현관에서 엉뚱한 운동화를 신고 계시다. 나랑 이모가 동시에 '그거 그거 아니고, 서두르지 말고, 엄마 운동화는 그 옆에 있잖아!'라고 외치는데도, 계속 엉뚱한 운동화를 신고 있다. 다가가서. 다정하게. '엄마, 그 신발 아니고 옆에 있는 이 신발이잖아요. 비슷하게 생기긴 했네. 내가 잡아줄 테니 바꿔 신어요'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아니아니아니, 아니라는데 왜 못 듣고, 아니라는데 그것도 못 듣고 왜 계속 그러고 있어!!! 그 신발 아니라니까!!! 그게 왜 빨리 안되는데 왜!"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밖에 안 나오는 건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보는데. 엄마(고두심)와 아들(강하늘) 대화가 마음에 꽂힌다.


아들은, 자기가 어릴 때 입었던 '오 필승 코리아' 티셔츠를 입고 있는 엄마를 보고, "그거 좀 버려!"라고 '지랄'하며 이렇게 말한다.

 

"새 옷 안 사 입고 새 신 안 사신고, 그렇게 아껴서 누구 주려고. 그렇게 아껴서 자식 주면, 그거 자식 속에다 못 박는 거라고 그게!"


엄마는 아들이 없을 때, 그 티셔츠를 버리며 혼잣말로 이렇게 말한다.


"내 속에는 웬갖 못을 30년을 때려 박고도, 지 속에는 못 하나 박는 게 디지게 싫다는데 어째. 해줘야지. 내 새끼 가슴에 맺힌다는데. 그거 하나가 더 따가운 걸."




내가 맨날 잔소리하고 구박할 때.

이름을 고쳐 부르며, 떨어진 음식을 겸연쩍단 표정으로 치우며, 신발을 바꿔 신으며,

우리 엄마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해줘야지. 내 새끼 가슴에 맺힌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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