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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Dec 21. 2019

"애가 아파서요."

본래,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징한 법입니다. 

이번 '병상 일지'는 약 한 달쯤 전부터 시작한다. 


# 첫 주~둘째 주. 

감기에 걸린 상태였는데.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할 거 같아서 종일 말도 안 하고 목을 아꼈다. 그렇게 기사를 쓰고, 녹음을 하러 오디오 부스에 갔는데 입을 떼자마자 8만 갈래로 갈라진 목소리가 나왔다. 깜짝 놀라서 선배한테 급하게 '대신 읽어달라'고 요청했다. 다음날 예정된 중계차도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야 했다. 후두염이라는데 너무 오래갔다. 결국 그 상태로 부산 출장을 갔고, 2박 3일 동안 스테로이드 처방과 '미놀'로 버텼다. 목소리는 서서히 좋아졌지만 깨끗하게 낫진 않았다. 


# 셋째 주.

저녁 자리가 늦게까지 이어지고 있었는데 남편한테 연락이 왔다. 인규가 계속 토하고 있어 응급실을 가야 할 것 같단다. 가슴팍이 덜컹 내려앉아, 그 길로 집에 갔더니 지친 인규가 아빠 어깨에 축 늘어져 있다. 아픈데도 엄마랑 병원에 간 게 좋은, 안쓰러운 인규는, 간호사 선생님이 '이름이 뭐니?'라고 물으니 '인규인데요, 이제 15kg이 됐어요.'라고 답했다. 깡 마른 인규가 며칠 전 15kg을 넘자, 나랑 남편이 덩실덩실 춤을 췄던 터였다. '내가 너무 몸무게에 집착했나' 하는 동시에 '토하고 설사하면 몸무게 빠지겠지'라고 생각했다. 


나도 기침이 3주째 이어지고 있던 터라 인규랑 나란히 누워 수액을 맞았다. 당장 몇 시간 뒤 조간을 읽고 아침 보고를 해야 하는데. 선배한테 사정이 이러저러하다 양해를 구할까 잠깐 생각했지만. '애가 아파요'라는 워킹맘의 상용구가 목구멍에서 턱 걸렸다. 5시 반 조간을 읽고, 병실 한켠에서 전화를 돌린 다음 7시, 아침 보고를 띄웠다. 그리고 선배한테 '응급실이라 오후 출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배는 역시나 아예 오프를 줬다. 함께 일하는 선배는 내 처지를 충분히 이해해줬다. 문제는, 그놈의 처지가 너무 잦다는 거였다. 긴장했던 터라 그런지 인규의 장염이 전염성이 있는 거였는지 나도 토하기 시작했다. 구토를 끝낸 인규는 설사를 시작했다. 


# 넷째 주~다섯째 주. 

그렇게 며칠을 고생하면서 인규도 나도 차츰 좋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규 기침이 심상치가 않다. 기침하느라 잠을 못 자길래 토요일 오전 병원에 데려갔다 왔다. 그리고 그날 밤. 인규는 40도를 찍었다. '고열-오한-기침-기침으로 인한 구토'로 힘들어하는 인규 곁에서 밤을 새다시피 하고 일요일 출근을 했다. 그렇게 이틀은 꼬박 고생하고 월요일, 야근을 했다. (우리 회사 야근은 정말 밤을 꼴딱 샌다.) 인규 열은 사흘째 되니 잡혔다. 폐렴이었다. 아이들은 감기에 걸리고 그 감기는 아이들의 가장 약한 곳으로 파고 들어가 병을 키운다. 인규는 그게 '폐'였다. 벌써 몇 번째 겪은 폐렴이었다. 그렇게 지난 한 달 여, 내 후두염과 배탈을 바탕에 깔고, 인규의 장염-폐렴 콤보를 치렀다. 




드라마를 보면 워킹맘이 애가 아파 회사에서 쩔쩔매는 장면이 꼭 나온다. 너무 상투적인 이 장면. 인규를 키우기 전까지는 '클리셰의 클리셰'라고 생각한 그 장면. 그런데, 아이는 정말 자주 아프다. 나도 키워보기 전에는 몰랐다. '왜 애기 엄마 선배들은, 매번 저렇게 사연이 많을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어른들이면 며칠 고생하고 넘어갈 감기도 아이들은 쉽게 중이염으로, 폐렴으로 번진다. 감사하게도 '애가 아프다'면, 충분히 이해해줄 동료들과 일하고 있지만. '이해해주는 것'과 '그것 때문에 안그래도 힘든 내가, 더 힘들어지는 것' 사이 간극은 다른 문제다. 정말 이를 악 물고 버티고 있는데. 사실 지난 몇 주, 몇 번의 순간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할게요' 하고 싶었다. 


출입처 특성상, 애기 엄마인 여기자가 귀하다. 특히나 퇴근이 늦은 방송기자 중에는 그러고 보니, 애기 엄마가 거의 없다. 가만 보면, 여기는, 똑똑하고 일에 올인한 젊고 유능한 여기자들을, 회사가 쪽쪽 빨아먹는 구조다. 이 출입처에 와서 능력도 매력도 철철 넘치는 여기자들을 수도 없이 많이 만났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책이 베스트셀러인 시대인데, 그녀들은 정말이지 열심히 산다. 그런 그녀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나처럼 병상 일지를 쓰게 되겠지. 아냐. 일단 대부분은 이 출입처에서 사라지겠지. 뭔가. 방법은 없는 것일까.


누군가는 나한테 '선례를 만들라'고 했다. 하루하루 버티는 동력에, 그런 책임감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오래오래 버틴다 한들, 내가 만들 선례에는  1번. 함께 살면서 모든 살림과 육아를 해주는 친 이모 

2번. 15분 거리에 살면서 거의 바로 출동해주는 친정엄마  3번. 내 일을 존중해주시는 원조 워킹맘 시어머니 등등의 조건이 붙는다. 누군가 '워킹맘계 금수저'라고 부른 그 조건들이 줄줄이 붙는 선례가,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혹은, 그 조건들은 가려진 채 '나는 이 악물고 버텼어'라는 서슬 퍼런 협박만 남는 건 아닐까. 


근본적으로는 노동 시간이 줄고, 남녀의 육아 부담이 동등해지고, 그 동등한 부담 상당 부분을 사회가 지는 게 맞다. 근데, 오래 걸릴 것 같다. 당장 내가 살 길도 필요하고. 또 내가 아끼는 저 아름다운 젊은 여성 후배들이, 덜 고통스럽게 가정도 꾸리고 아기도 키우는 삶을, 선택지에 놨으면 좋겠다. 


방법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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