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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Feb 05. 2020

배영옥 화법

'원조 가마니'의 말하는 법

회사 생활 11년,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 된다'는 말은, 이제 신념에 가깝다. 이런 말들은 주로 가마니들이 많이 하는데, 왜냐. 가마니들은 그걸 알면서도 주로 가만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싫지, 그런데도 가마니들은 타고나길 그러한지, 대체로 가만히 있는다. 옆사람에게 '하아.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 된다, 너?'라고 하면서. 


엄마는 가만히 있다 가마니가 되어 괴로워하는 나를 보면, 늘 '언젠가 복 받을 거야'라고 하셨다. 손해 보듯 사는 게 좋은 거라고. 나는 이런 내 성격이 어쩔 수 없다 생각하는 게, 내가 아는 '가마니 중 가마니', 원조 가마니가 바로 우리 엄마, 배영옥 여사기 때문이다. 내 친구들은 우리 엄마를 '희생의 아이콘'이라고 부른다. 무한도전에 가까운 '정치부 워킹맘 기자'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것도 24시간 비상대기를 해주는 엄마 덕분이다. 우리 엄마는 그렇게 힘들게 세 딸을 키웠으면서, 이제 손주들을 키우고 계신다. 그것도 첫째 딸 손주들 보느라, 막내딸 손주들 보느라, 서로 자기 자식 봐달라는 딸들 눈치 보느라 늘 종종거리면서.  


지난 설 연휴, 그런 엄마를 모시고 쇼핑몰에 구경을 갔다. 자, 여기서부터는 첨예한 눈치게임이다. 엄마는 절대 '맘에 든다'고를 안 하신다. '필요하다'고도 안 한다. '그냥 내려놔, 그런 거 필요 없고, 맘에도 안 들어'라며 눈을 무섭게(무서워 보이게?) 뜨시고 정색을 한다. 그때 신호를 놓치면 안 된다. 물건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든지, 뒤를 돌아본다든지, 말 사이 '마'가 뜬다든지, (제일 중요한 신호는) 가격표를 본다든지. 그런 무수히 많은 비언어적 신호를 잘 지켜보고 있다가 밀어붙여야 한다. "이거 이뻐, 무조건 사, 그냥 사!!!"라고 하면, 일단 엄마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때를 잘 포착해 "이거 주세요"라고 밀어붙이고 나면, 엄마는 멈칫, 하신 뒤. 그제서야 뭔가 말-간 표정이 나온다.  '이쁘긴 이쁘지.'라고 하면서.


딸들끼리 '배영옥 화법'이라고 부르는 특유의 화법이 있다. 

1. 절대 속마음은 말하지 않는다. 2. 진심에서 먼 말부터 한다. 3. 정색부터 한다.   


늘 이렇게 하시니, 나도 머릿속이 복잡하다. '진짜 원하시는 게 뭐지?' 열심히 짱구를 굴려야 하니, 대화할 때 공이 많이 든다. 그냥, 속 시원하게, 원하는 거, 드시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다 말하면서 편하게 사심 좋겠는데. 엄마는 절대 안 그러고, 나는 그런 엄마를 자주 답답해한다. 


그런 '배영옥 화법'의 특징은, 엄마의 친언니자 '정반대' 성향을 갖고 있는 이모와 1년 넘게 함께 살면서 더 명확히 알게 됐다. 뭘 부탁하면 뭐든지 두루뭉술하게 '좋다, 된다'고 만 하고. 뭘 해드린다고 하면 뭐든지 두루뭉술하게 '싫다, 필요없다'고 만 하는 우리 엄마와 달리, 우리 이모는 대화할 때 화살을 던진다. 원하는 거, 갖고 싶은 거 바로 딱딱! 꽂아버리신다. 처음 이모랑 함께 살 땐 적응이 어려웠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 오히려 편했다. 내가 머리를 굴려가며 배려할 필요 없이, '필요하신 거 없는지, 기분은 어떠신지, 토요일에 인규 봐주실 수 있는지' 이모한테 물어보면 되니까. 


학창 시절. 이모는 엄마랑 살았지만, 우리 엄마는 아빠랑 살았다. 딴 살람 차려 나가 버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수완 좋게 살림을 일궈놨으면서도, '아이들은 아빠 밑에서 커야 한다'며 자식들을 남편한테 보냈다. 머리 굵은 큰딸은 '죽어도 싫다'며 계속, 계속, 엄마한테 돌아갔지만, 둘째 딸- 우리 엄마와, 막내아들- 우리 외삼촌은 그냥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아빠랑 살았다. 외할아버지는 무서웠던 거 같다. 불호령이 떨어질 때면 온 가족이 마당에 한 줄로 서서 훈화를 들어야 했는데 딸, 아들, 그리고 끝에는 애완견 '마루'까지, 열을 맞춰 서있었다고 한다. 이게 내가 들은 거의 유일한 외할아버지 에피소드다. 엄마는 옛날 얘기하시기를 지독히 싫어하신다. 


가끔. '우리 엄마는 그래서 가마니가 됐을까?' 생각해본다. 인규를 키우면서 느낀다. 아이들은 엄마가 아무것도 안 해줘도, 그냥 옆에 있기만 해도, 어깨가 올라간다. 나는 인규가 없어지는 삶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지만, 내가 없어진 인규의 삶도 상상할 수 없다. 그냥, 상상하기가 싫다. 


엄마는 내가 외할머니에 대해 물으면 (일단)'뭘 알라그래, 묻지 마!'라고 하시면서. "그 할마씨. 어떻게든 자식들을 데리고 살았어야지."라고 하신다. 자식과 손주에 대한 엄마의 무한한 희생이 어디서 왔는지 살짝 알 것도 같다. 그 희생 덕에. 내가 컸고 인규가 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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