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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Feb 22. 2020

오지랖을 허하라

아아, 무례함은 넣어두시고요.

만삭 때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늘 버스는 만석이었지만, 자리는 딱 한 번 양보받아봤다. 어느 중년 아주머니셨다. 너무 고마워서, 나도 앞으로 임신부가 있으면 꼭 양보해줘야지, 다짐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배려를 해줄 시점이 되고 나니, 실천이 쉽지가 않았다. 임신부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려면, 먼저 버스 타는 사람들, 내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봐야 한다. 주변에 '관심'이 있어야 배려해줄 수 있는 거였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이어폰 꼽고 스마트폰만 보니, 사실 주변을 볼 일이 많지 않다. 일부러 봐야 하는 거다. 게다가 '앉으세요' 권하는 것도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임신부 아니면 어쩌지'부터, '말 거는 거 싫어하면 어쩌지', '곧 내릴 건데 내가 오버하는 거 아닌가'까지. 망설이게 되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친정집 근처에 특수학교가 있는데 어느 겨울, 엄마랑 같이 길을 가다가 특수학교 근처 내리막길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학생을 보게 됐다. 자폐성 장애가 있는 학생이었는데 덩치가 큰 남학생이었다. 길이 얼어서 미끄러워 보이니 무서워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던 거였다. 나는 솔직히... 무서웠다. 워낙 길이 심하게 얼어있어서 미끄러질까봐 무서웠다...고 내 기억은 포장하고 있지만, 장애가 있는 덩치 큰 그 남학생이어서 무서웠다. 내심 그냥 지나가거나, 내려가서 다른 사람을 부르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우리 엄마는 그 학생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가까이 갔다. '내 손 잡아, 잡으면 돼' 라며. 그리고는 본인도 죽죽 미끄러지며 그 학생을, 땅이 마른 곳까지 끌고 나왔다. 그때 나는, 멀찌기 선 자리에서 손 한 번 뻗어주지 못하고 보고만 있었다. '미끄러질까봐 무서운데' 라면서.


엄마는 앞에 가던 할머니 짐이 무거워 보이면 거침없이 '가는데까지 들어드릴게요'라고 했고. 뭐라도 하나 더 생기면 꼭 윗집 옆집 두드리며 '이거 드세요' 하고 챙겼다. 난 또 이게 싫었다. 일단, 상대가 좋아하는지 알 수도 없는데 굳이 왜 고생하나 싶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겪은 '불쾌한 오지랖 경험들'이 이런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학창 시절 버스에 앉아있는 내 다리를 툭툭 치면서 '학생 자리 좀 비키지' 했던 아줌마. 갓난쟁이 인규를 보며 애가 작다느니, 이렇게 춥게 키우면 안 된다느니, 반대로 애는 시원하게 키워야 한다느니... 사람 심난하게 만드는 처음 보는 아줌마, 할머니들... '무례함'과 '오지랖'은 분명 다른 건데, 경계가 불분명했고, 자주 불편했다. 


그런데 인규를 갖고, 낳고, 키우는 사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돌봄의 경험'이 가져온 변화다. 내가 나 하나 먹고, 자고, 살아가는 데는 내가 단단하기만 하면 괜찮았는데. 내가 나를 넘어 누군가를 돌보다 보니, 나만 단단하다고 해결될 게 아니었다. 주변 도움이 자주 절실했고, 그 절실함을 겪어보니 애 키우는 사람을 보면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졌다. 세상 불편할 거 없고, 건강하고, 젊은 내가 '임신부'라는 정체성을 겪은 뒤에야 '버스 자리를 양보해야겠다' 생각하게 된 거다. 오지랖이 보통 '여성'의 단어인 것도, 우리 사회에서 '돌봄'이 주로 여성들 몫으로 던져졌기 때문- 아닐까 싶다. 


엄마 딸로 살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돌봄'의 기억들이 이제야 제자리를 잡은 것 같다. 아들인 인규에게도, 오지랖 DNA를 잘 넘겨주고 싶다. 인규가 사는 세상은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돌봄을 경험하고, 그런 경험을 통해 오지랖에 관대해지는 사회였음 좋겠다. 아아, 단, 무례함은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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