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벨을 들어 올리는 마법의 주문
나를 움직이는 트레이너의 말
트레이닝 50분 동안 나는 자주 뇌를 비운다. 두세 달 씩 여러 번 배워본 요가나 맛만 봤던 필라테스를 익혔을 때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호흡이 중요한 요가는 호흡을 내뱉으면서 구석구석 내 몸의 반응을 찬찬히 살펴봤다. 하지만 트레이닝은...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 하면서 오직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 갖고 지속적으로 헐떡인다. 내가 수업 중 가장 많이 하는 말도 '너무 아파요'랑 '아무 생각이 없어요'다.
"옳지, 좋다, 그거예요! 이제 좀 감이 와요?"
"(숨을 헐떡이며) 아무 생각이 없어요."
뭐, 이런 식이다.
그렇게 왼쪽 오른쪽 구분조차 생각해낼 수 없을 만큼 극한의 상황으로 자꾸 밀어 넣으며 트레이닝 선생님은 '말'을 던진다. 어딘가에는 숨어 있지만 지난 수십 년 간 꺼내본 적 없는 근력의 움직임, 마지막 한 번을 더 쥐어 짜내기 위한 부스터다. 조금 더, 한 번만 더 힘을 짜내고 싶을 때 선생님은 '혀 끝에 힘을 줘라'고 알려줬다. 혀 끝까지 힘을 줘야 할 만큼 극한의 힘을 끌어올리는 상황, 어떤 말을 듣느냐에 따라 때로는 기어이 끝을 보기도 하고 때로는 맥이 탁 풀리기도 한다.
나한테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대표적인 말은 '여름에 비키니 입으셔야죠!'였다. 그렇다. 나는 체지방률 34%였어도 휴가 가서 비키니를 입었다. 이건 나름 오랜 훈련에 따른 결과다. 나이를 먹을수록 '다른 사람은 나만큼 내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된다. 물론 틈틈이 거울에 비친 몸을 보며 한숨을 쉬고 몸이 이쁜 사람들이 지나가면 안 보는 척 가자미 눈으로 쳐다봤지만 그렇다고 내가 입고 싶은 수영복을 포기한 적은 없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시선 따위는 무시할 만큼 나이 먹은 최근 10년. 적어도 대놓고 몸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만한 '개념 없고 폭력적인 사람'은 주변에 두지 않고 살아왔다. 최근 내 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놓은 건 뀨가 유일했다.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컸지만 아직 '선의의 거짓말'은 모르는 나이. 뀨는 내 허벅지와 배를 만지며 '말랑말랑~ 말랑말랑~ 통통한 우리 엄마~'라며 활짝 웃었다.
그밖에도 트레이닝 선생님은 '예쁜 트레이닝복으로 바꾸셔야죠' 라거나, '엉덩이가 빵빵해진다' 등등의 말을 던지셨지만 속으로 '옷은 뭐, 편함 됐지'라거나 '엉덩이 빵빵한 거 싫은데'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아, 참고로, 여자 선생님이시다.) 빵빵한 엉덩이, 큰 가슴, 잘록한 허리. 생각만 해도 기괴하다. 그 기준이 어디서 온 건지도 잘 안다. 그래서 더욱 거절하고 싶다. 나름 내가 좋아하는 몸이란 '취향'이 있지만 이 또한 미쳐 버리지 못한 내 편견이 담겨 있고 누군가에게 폭력적인 시선이 될 수 있으므로 내 머릿속에만 담아 둔다.
반대로 덤벨 불가리안 스플릿 스쿼트를 '시도'하며 빠져가간 혼이 다시 돌아오게 되는, 트레이너의 신비한 말은 이거다. '꽉꽉 회원님도 8개 했어요!'
꽉꽉. 함께 운동하는 남편이다. 같은 선생님한테 하루씩 번갈아 트레이닝을 받다 보니 비슷한 운동을 할 때가 많다. 이미 뭐 체급에서 비교가 안 되니 운동량이나 무게로 남편을 이길 수는 없다. 그런데도 저 얘기를 들으면 '바짝' 힘이 솟는다. 이를 악 물고 "그렇다면, 나도 8개!!!" 이런 식이다. 음... 성격이다.
그다음은 '나 운동 진짜 잘해!' 나 '나 힘 진짜 쎄!'.
옆에서 선생님이 주문을 외우듯 외쳐준다. 그러면 나는 정신 나간 여자처럼 '나 힘 진짜 세다'를 중얼거리며 한 번이라도 더 덤벨을 들어 올린다. 조금 웃기지만 약간 '자기애'와 '자아도취'가 들어가 줘야 운동이 잘 된다. 체육관에 가는 한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해 쓰는 유일한 시간이다. 쥐 날 때 빼고는 몸에 근육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살던 내가 중둔근을 쓰고, 어깨를 쓰고, 복근을 단련시킨다. 힘이 세지고 강해진다는 주문이 탈탈 털린 영혼을 꽉 붙들어준다. 내가 시간과 돈을 들여 운동을 하는 이유다. 몸도 마음도 강해지고 싶다.
+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 요즘 나한테 엉덩이나 비키니 얘기는 더이상 하지 않으신다. 역시, 베테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