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 Oct 19. 2019

'흙'과 '좋은 이웃'

일곱은 아녀도... 셋은 낳을 수 있을 거 같다. 

볼음도로 '조카캠프'를 다녀왔다. 


볼음도에서 농사를 짓는 둘째 언니와, 언니와 함께하는 '우동사' 가족분들이 마련해준 자리였다. 섬에 들어가서 그물 한 번 털고, 점심을 먹고, 고구마 밭을 향했다. 수확이 늦어진 터라 했다. 호미로 땅 파는 것부터 할 줄 알았는데 기계로 밭을 갈아준다. 고구마 캐기 '체험'이 아니라 농사짓는 사람들이다. 기계가 지나는 곳마다 고구마가 알알이 매달린 줄기가 땅 위로 드러난다. 고구마를 꺾어 흙을 털고, 판매할 것들은 판매할 것대로, 상품성 없는 '파지'들은 파지대로 모아, 볕을 쬐게 둔다. 제법 모양이 이쁘고 굵은 고구마가 나오면 그것대로 기분 좋고, 파지가 나와도 그것대로 맛있게 먹음 되니 기분이 좋다. 거두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을볕에 말렸다 상자에 담는다.

고구마 수확에 한참 집중했는데, 인규가 날 찾지를 않는다. 평소였으면 등에 매달리고, 다리에 매달리고. 뭘 해도 같이하자, 괜히 이것 좀 해달라, 저것 좀 해달라 몇 번이고 보챘을 텐데. 고구마 밭에 도착하고서, 인규한테 '예쁘게 생긴 고구마를 골라 상자로 옮겨달라'고 일을 시켰는데. 처음 몇 번 '이것 좀 봐봐'라며 요란하게 하더니 그 뒤로는 이런저런 놀이를 하며 혼자 잘 논다. 애들은 일단 '흙'이 있으면 참 오래, 잘 논다. 뭘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펐다, 옮겼다, 쌓았다, 무너뜨렸다... 바쁘게 논다. 공벌레도 나오고, 녹색 애벌레도 나오고, 고구마처럼 생긴 돌멩이도 발견하고. 밭에는 놀 거 천지다.

머리에... 뭘 쓴 거니?

굳이 엄마 말고도, 좋은 사람이 많은 것도 나를 찾지 않는 이유였을 거다. 캠프를 기획하고 추진해준 이모, 삼촌들이 엄마 역할을 나눠 해줬다. 인규가 볼음도 내내 행복해 보였는데, 인규가 더 행복했던 건지, 내가 여유가 생겨 인규의 행복한 표정을 더 잘 읽었던 건지 모르겠다. 나란히 붙은 3개 집에 일행들이 나눠서 머물렀는데, 인규는 '잠깐 다른 집 갔다 올게'하면서 수시로 들락거렸다. 다칠까 봐 불안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가 갈까 봐 '엄마 보이는 데 있어야지' 했다가. 시간이 좀 지나니 편안해졌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인규의 동선을 확인해주고 있었고, 인규가 필요한 게 있으면 '인규 엄마~'를 찾지 않고, 알아서, 자연스럽게, 나와 같은 마음으로 챙겨줬다. '이웃들'이었다. 


인규 낳고 가장 많이 했던 생각 중 하나가 '아니, 옛날에 일곱, 여덟은 대체 어떻게 키운 거야?'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답을 알 거 같았다. 밭에 나가서 일하면 애는 알아서 흙 파고 놀고. 집에서 다른 일을 해야 하면 이웃들이, 가족들이 함께 돌봤을 거다. '지금처럼' 살면서 '지금 같은 사회 시스템'에서 애 키우는 게 불가능하고 힘든 거였다. 노동시간은 길고, 손을 덜어줄 친근한 이웃은 찾기 힘들다. 


왜 나는 애 하나로, 우리 엄마 인생까지 다 빼앗으며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걸까, 생각해보니. 지금 내 삶의 방식 자체가 일과 삶이 완전히 분리돼 있다. 애 키우고 행복하게 살려고 일 하는데 근무시간 내내 가족과 떨어져 있고, 삶을 잘 살아가는 게 목표인데, 살아가는 과정은 대부분 외주화 했다. 아침 8시 출근-저녁 8시 퇴근. 육아는 어린이집, 그 외 육아와 살림은 이모할머니. 이렇게 1년 넘게 했더니 우리 집에 쌀이 어딨는지도 모르게 됐다. (지난 주말 한참 찾았다...). 주말 근무도 잦다. 주말 근무 때 육아는 외할머니한테 외주화 했다. 나중에 인규가 커서 '엄마, 우리 애 좀 키워줘' 하면 뭐라고 할지 일찌감치 준비해놨다. "얘야, 너도 내가 안 키웠단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내가 선택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생계를 위해 떠밀리듯 이렇게 살았으면 반년도 못 버텼을 거 같다. '오늘도 늦는다'는 엄마를 기다리며 주구장창 TV 만화를 보는 인규 역시. '자기 운명'이요, '본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딸의 선택을 위해 늘 희생하는 우리 엄마, 엄마의 삶이 늘 걸리지만. 엄마가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는 나를 통해 '못 살아본 삶'에 대한 회한을 어느 정도 풀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볼음도 가을볕에 '잘 익은' 인규의 얼굴을 보면 '내가, 너무 큰 걸 놓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균형'을 위해 움직여야 할 때가 있을 거다. 너무 늦지 않게 잘 지켜보고 있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