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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담 Oct 07. 2017

저효율 인간

'가성비'를 외치는 요즈음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인간에게 전자제품처럼 소비자 효율 등급 스티커를 붙인다면 나는 어떤 등급을 받을까.

결코 빼어나지 않았던 학교 성적처럼 마지못해 +을 붙여 C+ 정도 될까?


효율이 좋다는 말은 최대한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한다는 뜻이다. 시간, 마음, 재산 무엇하나 손해가 없도록 해내는 것이다.


중학교 때 히스테리가 심하던 한 사회 선생님이 매 수업마다 3번씩은 꼭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입니다."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래서 '합리'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나는 그 선생님의 충혈된 눈과, 깡마르고 다부진 어깨가 괜히 생각이 난다. 참 단단하면서 정이라곤 한톨도 없는 단어 아닌가? 그 기억 속에 있는 한 나는 역설적이게도 결코 합리적인 결과를 인간적인 결과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 만 같다.


별개로 내 존재의 합리성을 따지면 또 그렇게 인간다운 점수는 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성실하지만 융통성과 요령이 절판된 상태라서 쿼츠 시계처럼 똑딱똑딱 움직일 수가 없다. 차라리 햄스터에 가깝다. 태생이 야행성인 탓에 주인이 잘 때 기어코 챗바퀴를 돌려 미움받는 햄스터. 먹고 자고 잘 싸는 일 밖에 없는 연약한 털 뭉치.


저효율 인간으로 산다는 건 참 피곤한 일이다. 인생에 우아함이란 없고 언제나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더 좋은 결과를 위해서. 저효율 인간은 때때로 소중한 것을 깎아 일상을 지키기도 한다. 과제를 제 때 완성 못해서 밥을 못 먹고, 밤을 새우고, 친구를 만나지 못한다. 시시때때로 있는 일이다. 희생한 만큼 결과가 아름답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마린이 스팀팩을 쓴다고 어떻게 캐리건을 이기겠는가. 애초에 레이머라면 모를까.


어쩌면 나에게 소중한 가치들은 세상에게는 하찮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나를 부릅뜨고 감시하는 동안은 나는 영원히 저효율일 수밖에 없다. 내가 효율 측정기를 그 손에서 건네받을 수 있을 까? 최소한 독기를 품고 뺏어서 세상에 도로 겨눌 수 있을까?


모두에게 점수가 매겨지는 세상은 너무 명확하지만, 그렇게 해상도가 높은 세상에서는 나는 살 수 없다.

어린 나이에 한번쯤은 겪어봤을 명절 장난 : 동전이 지폐보다 더 좋은 거라며 코묻은 용돈 뺏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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