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레테.
나는 참 잊기도 잘 잊습니다.
엊그저께즈음
현관 도어락의 비밀번호가 새로 바뀌었던 걸 잊었습니다.
멍하니 서너자리를 꾹꾹 누르고서야
실수를 눈치챘습니다.
나의 그리운 레테.
오늘도 당신과 흘러갑니다.
당신의 뜨거운 무기력함이 이따금 그립습니다.
아아. 두 우주 전의 나는 당신을 건너며 기억의 문을 잠갔지요.
다섯 우주 전의 나는 당신의 힘을 빌려 깨끗한 영혼으로 씻어졌습니다.
나의 동경하는 레테.
나는 참 잊어버리질 못합니다.
잊고 싶은 것은 쉽사리 잊히지 않습니다.
근래 가장 잊고 싶은 것은 폐의 사용법입니다.
당신과 가까워지는 길이 점점 달콤해보이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