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Live well)

3장 #1 나들이

by 단영화

움에는 끝이 없다.

이미 성인이 된 시점에 배움이라고 하면 흔히 학교를 떠올린다.

대한민국 국민 중 내 또래 대부분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도합 12년의 기초 과정을 겪었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을 기본으로 체육, 미술, 음악 등 예체능과 도덕, 윤리 등 소양 교육 등 상당히 다채롭다.

나는 한국의 공교육을 무척 좋아했다.

지금 수업이 예전과 같은지 모르니, 지금도 괜찮은지는 모르겠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명칭이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뀌었고, 중학교 3학년 때 교과서가 컬러로 나왔다.

고등학교에 가니 맨들맨들한 종이의 교과서가 나와서 필기하느라 무척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5차, 6차, 7차 교육 과정이 변하는 동안 학교를 다녔지 않나 싶다.

자기주도적 인재 양성을 목표로 발표 수업을 도입했을 때였고, 덕분에 초등학교 모든 수업의 과제가 대부분 부가 자료를 곁들인 발표였다.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 애먹었던 것 치곤 뼛속부터 관종끼가 다분했던 나는 그 모든 수업이 아주 좋았다.

당시 교육 시스템이 굳이 애써 내가 하겠다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매번 나서게 종용했다.

특히 시골 학교라 학생도 적어 의지만 있으면 하고 싶은 모든 활동이 가능했다.

수업 발표부터 음악, 미술, 체육, 글쓰기, 각종 예체능에 경시대회까지 두루두루 참여하다 보면 일 년이 훌쩍 지났다.

작은 마을의 최대 장점은 인재가 적다는 점이고 조금만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 도드라지기 마련이다.

활활 불태운 열정은 인풋 대비 아웃풋이 확실했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어느새 새벽 2~3시가 넘도록 발표 자료를 준비하고 대회 준비를 하면서 희열을 느꼈다.

어느새 놀이와 공부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그러면 공부가 재밌으니 잘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보면 흥미가 생기지 않을 때 공부하지 않을 수 있다.

놀이는 호기심이 생기고 재미가 있어 흥미로워야 논다.

이때 생긴 습관이 사서 고생하는 지름길이 될 줄 몰랐다.

성인이 된 지금도 관심 안과 밖의 차이가 극심하다.

타인과 맞춰 살려고 비위 맞추기도 어려운 마당에 그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내 비위 먼저 맞추려 얼르고 달래야 하는 나날의 연속이다.

세상엔 그냥 해 라는 말이 통하는 자와 그냥 하면 정말 폭망 하는 자가 있다고 본다.

나는 심각한 후자에 속하고 내 인생이 망하지 않기 위해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선 안으로 자꾸 밀어 넣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을 좋아한다.

집 나간 호기심도 불러오는 마법의 문장이기 때문이다.

원래 지독한 집순이라 외출을 좋아하지 않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이 문장 하나가 세상을 겪고 보고 싶게 눈에 대단한 콩깍지를 씌웠다.

집이 어려웠던 시절에도 나는 비행기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대학에 간 후 배움이라는 단어가 점점 범위를 넓혀갔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비즈니스의 세계와 돈으로 누릴 수 있는 각종 서비스, 어른들의 유흥을 거쳐 인간 수만큼 많은 취향의 세계, 취미를 엿보면서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을 절감했다.

그런 점에서 여행만큼 좋은 공부는 없다.

관광지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데 어딜 가더라도 관광지는 어딘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오랜 시간 사람들이 모여서 형성한 낯선 이질감이 부족하다.

낯선 환경, 불편한 이질감에서 얻는 반짝반짝한 느낌이 있다.

머릿속에 별사탕을 뿌린 것처럼, 어쩔 줄 모르는 기분.

극심한 중독자처럼 자꾸 뭘 배우고 싶은 이유다.






창 시절 동안 매년 한두 번 정도 소풍을 갔었다.

내내 학교에서 책상 앞에 앉아 교과서만 보다가 가뭄에 콩 나듯이 전교생이 공식적으로 다 함께 외출하는 그런 날이면 학교 분위기 자체가 들떴다.

나는 그 가볍게 둥실둥실 뜬 분위기 자체가 좋아 새벽같이 설렘 속에 눈을 뜨곤 했다.

늘 그렇듯 웃고 떠드는 일상이지만 공기 중에 솜사탕이 섞인 듯 묘한 흥분으로 달아오른 분위기가 예고된 선물 상자를 하루 종일 기대 반 두근 반 상상하는 듯했다.

평소보다 다소 늦게 운동장에 모인 친구들, 들뜬 웃음소리, 시끌벅적하게 재잘대는 목소리, 다그치는 선생님 호통과 멀미를 유발하는 버스 좌석의 오래된 냄새와 탁한 공기, 간식을 나눠 먹다 보면 창밖으로 스치는 낯선 풍경과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 쾌청하게 맑았던, 그리고 빗방울이 또륵또륵 흘러 유리창을 적시며 흐렸던, 모든 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돌아올 땐 지칠 대로 지쳐 고요했던 버스 안에서 친구들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여운을 느꼈었다.

한번 들뜬 마음은 쉽게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고 그럴 때면 있는 힘껏 예체능 활동에 몰입하곤 했다.

상당히 좋은 사이클은 인생에서 최적의 생산성을 뽑았다.

인간이란 습관의 동물이라, 좋은 경험의 반복은 강력한 습관을 만든다.

학교에서도 그러라고 소풍이니 현장학습이니 놀러 가는 거니 나는 대한민국 공교육의 좋은 샘플인 셈이다.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훌륭한 사이클 생성의 경험은 성인이 된 후에도 이어졌다.

결과가 있으나 없으나, 애쓴 후에 일정 시간이 되면 보상으로 반드시 어딘가 놀러 가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 굉장히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어쩜 이렇게 강아지 훈련보다 쉬울 수가 있을까.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종잇장 입김으로 불어 넘기기보다 쉽기는 해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복잡하게 살면 뭐 할 거며 비위 맞추기도 어려운데 훈련이라도 잘되니 다행이다.

20대엔 처음 가보는 곳에서 하는 색다른 경험을 좋아했다.

특히 혼자보다는 친구들이랑 놀러 가서 들뜬 그 애들의 반짝이는 눈과 상기된 뺨을 감상하는 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몇 번 좋은 경험이 쌓이자, 한동안 놀러 갈 때마다 이벤트 플래너처럼 여행을 계획하는 재미를 쏠쏠하게 봤다.

대단히 중독적인 즐거움이지만 30대가 되고 나니 체력이 떨어져 전처럼 준비하려니 사람이 기력이 떨어지고 쇠약해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놀 수 있을 때 더 놀고 돌아다닐 수 있을 때 더 돌아다닐 걸 하는 슬픈 생각이 든다.

글 쓰다 보니 이쯤에서 나는 도대체 왜 변리사 수험에 목을 맸을까 하는 의문이 또 든다.

돈 적당히 벌어도 놀고 싶은 만큼 놀지 않았을까.

취업해 서울로 올라온 첫해에 아주 흥미로운 여행 패키지를 발견했다.

그건 바로 서울 도시 투어였다.

서울에 동생 이외에 아는 사람이 없어 혼자 돌아다니기 심심했다.

동생은 이미 유부남에 애 아빠라 놀고 싶을 때 부를 수 없었다.

서글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같이 놀고 싶었으면 동생이 결혼하기 전에 얼른 일을 하고 자리를 잡았어야 했다.

아쉬운 대로 서울 도심지 도슨트를 신청해 가본 적 없던 서울 바닥을 구석구석 구경했다.

홍대나 강남 같은 번화가는 오갔어도 돈화문 근처 문화유적지 답사는 처음이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 들어본 이야기,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선선한 가을바람을 만끽한 날이었다.

미디어 아트를 주제로 한 전시회나 아트 뮤지엄도 다녀왔다.

다녀온 뒤에 가장 아쉬운 건 신나서 흥분이 최고조에 달해 어딘가 감상을 털어놓고 싶을 때 나눌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요즘 들어 긴 수험 기간의 의미를 애써 상기한다.






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가족끼리 가는 여행도 현장학습이라 해서 학교에서 공부한 것과 같이 쳐준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가족끼리 여행 간다고 학교를 빼먹는 일이란 천지가 개벽해도 감히 일어날 수 없는 천인공노할 짓이었는데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아마 학교가 아니라 여행이나 가족끼리 시간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치가 전보다 사람들 사이에 인식된 모양이다.

참 부러운 일이다.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집이 좀 살아서 여유 있는 편이었다.

갑자기 동네에 해외여행 바람이 분 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방학 동안 가족들이랑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한국 밖으로 나간다는 개념을 태어나서 처음 배웠고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또 다른 학교 친구는 가족여행으로 학교를 빠져야 했는데 학교에서 허락해 주지 않아 문제가 됐었다.

학생에게 학업이 먼저라 학기 중엔 반드시 학교에 출석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현재 세태와 비교하면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학교 변화의 방향에 양단이 있다면 자율성 확대와 통제력 약화일 것이다.

학교 내 교권과 권위가 바닥을 쳤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지만 실제로 분위기가 바뀐 건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다고 본다.

전에 잠깐 초등학생에게 공부를 가르쳤었다.

그때 학교 졸업 후 처음 초등학생을 가까이 마주 봤었다.

공부를 가르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친구들과 노는 방법이나 유행어, 또래들이 좋아하는 놀이, 유행하는 매체나 노래 이야기를 했다.

공부에만 매달리지 않고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부모님들도 아이들 의사를 존중하는 느낌을 받았다.

학교나 공부를 잠시 멈추고 여행을 가기도 했고 학교 외 체험 학습에 비중을 두기도 했다.

확실히 아이들의 활동 범위가 학교 담장보다 훨씬 넓었다.

당시에도 놀랐던 건 그때도 유튜버를 꿈꾸는 아이가 제법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린이였던 내 또래들의 학창 시절 경험이 아이들의 담장을 낮추고 배움의 정의를 새로운 시각으로 돌린 것이 아닐까.

과거 책으로 배우던 시대에서 영상으로, 또 경험으로 배우는 시대이다.

시대가 변하며 자연스럽게 바뀌는 현상이지만 가끔 아주 이상한 학교를 상상해 본다.

지금은 학교가 한 장소에 있지만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 꼭 한 군데 있으리라는 법도 없지 않을까.

그때까지 살아서 구경할 수 있을까 싶지만 상상하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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