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위하여(For the Story)

제 1장 이번 생엔... #1 눈을 감으면 도시는 물에 잠긴다 -4

by 단영화

치이익-

허-억-!!!!


주전자가 끓어오르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찢어질 듯한 파열음에 A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 다급하게 얼굴과 몸을 더듬었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했다. 팔, 다리 멀쩡하게 잘 붙어있었다. 꿈이라기에는 너무나 생생했다. 손끝, 발끝, 마디 마디마다 잔열감에 실제로 불탔던 것처럼 욱신거렸다. 저릿한 기운이 감돌아 온몸이 무너져 내리던 순간이 떠올랐다. 마주 봤던 인어의 시선과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생명을 스러지는 그 순간. A는 뭉근하게 밀려오는 고통에 뒷목이 뻣뻣하고 이마가 차가워 체온이 뚝 떨어졌다.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고개를 빠르게 가로저었다. 문득 고개를 드니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익숙했다. 매일 보던 천장과 침실의 분위기, 폭신한 침구까지 아주 친근했다. 꿈이 강렬해 잊어버렸지만 분명 소개팅 끝나고 집에 돌아오던 길이었다. 집 앞 골목을 지나다가 점액질을 통하며 쓰러졌었다. 그 후에 어떻게 된 건지 깨어난 곳은 집이었다. A는 어리둥절해서 주변을 살폈지만 별다른 건 없었다.


“깨어났느냐?”


예상치 못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A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꺄-악-!!!!!!!!”

“시끄럽다. 정신을 차렸으면 이걸 마셔라.”


탁하게 숨을 긁는 낮은 목소리, 흡사 짐승의 위협 같은 소리였다. 주방 쪽에서 들린 목소리는 결코 집에서 들은 적 없던 소리였고 들을 수 없어야만 하는 소리였다. 혼자 사는 집에 낯선 이의 목소리라니 A는 더욱 당황스러웠다.


“꺄악! 누구세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에 무기가 될 만한 물건이 있는지 두리번거렸다.


“참.. 말이 많구나. 나와서 얼른 마시라니까..”


무언가가 주방 쪽에서 움직이며 부스럭거렸다. A는 문에서 가장 먼 방의 모서리 최 끝단으로 바싹 붙어 몸을 낮췄다. 방문 앞을 노려보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경계하며 다가갔다.


“누, 누구시냐니까요...?!!”


조심스럽게 벽을 타고 옆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침실 문 근처 협탁 안이 눈에 들어왔다. 안에 여러 가지 물건을 놓아두었다. A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후다닥 협탁을 향해 움직였다.


“거.. 그냥.. 좀 와서 먹어. 야!!!!!!!!”


주방의 존재는 인내심이 다 했는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가뜩이나 낮고 거친 목소리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화들짝 놀란 A는 협탁에서 아무거나 잡아 들었다. 벌떡 일어나 다시 벽에 바싹 붙어 손에 꼭 쥔 무기를 부여잡았다. 두 손에 꼭 쥔 건 줄자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줄자를 소리 나지 않게 조금씩 뽑았다. 매끈하고 차가운 몸체가 길게 뽑히자 제법 무기처럼 보였다. 빳빳한 상태 그대로 동그란 플라스틱 본 통을 두 손으로 잡고 검이라도 되는 것처럼 쥐자 제법 위협적이었다.


“나와!!!!! 빨리 안 나와???!!!!!!”

“아니, 누구신데요?!!!! 왜 그러세요???!!!!”


싱크대를 크게 두드리는 듯 쾅쾅대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한 A는 숨을 헐떡이며 방문을 향해 조금씩 전진했다. 긴장으로 팔다리가 덜덜 떨렸다. 주방에서는 계속 싱크대를 내려치며 호통을 내질렀다. 오금이 저려 와 주저앉을 것 같았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에 A는 슬슬 화가 치밀었다.


“남의 주방에서 뭐 하는 거냐고요!!!!!!!”


방문 앞까지 간신히 도달한 A는 주방에 서 있는 낯선 존재를 향해 줄자를 힘차게 휘둘렀다. 줄자 끝은 정확히 주방의 존재 코앞에서 멈췄다. 줄자 끝과 존재 사이 거리는 대략 10cm. A와 존재는 시선이 마주쳤다. 용맹하기 그지없는 줄자 끝이 파라락 소리를 내며 힘없이 존재 앞에 떨어졌다. A의 시선에 들어온 건 줄자를 들고 침입자를 위협 중인 A보다 더 이질적인 존재의 모습이었다. 천장이 낮은 듯 존재는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렸다. 싱크대 위에 올린 투명한 유리컵에는 검정빛에 가까운 보랏빛 액체가 담겼고 그 주변에 수상쩍은 유리병을 좋을 대로 늘어놓았다. 존재는 고급 원단을 양껏 사용해 만든 멋들어진 검은 정장을 입었고 머리에 큰 모자를 푹 눌러 써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정장 아래 드러난 피부는 혈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푸릇했고 핏기 없는 탁한 보랏빛의 혈관이 투명하게 비쳤다. 놀라운 건 분명 존재는 짙은 갈색과 초콜릿색, 적갈색이 조화롭게 섞인 고급 수제 구두를 신었는데 신발과 바닥이 전혀 닿지 않는 것이다. A는 등골이 오싹해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무기는 제 기능을 잃었고 A는 할 말을 잃었다.


“...마셔.”


존재는 낮게 울리는 위협적인 목소리로 수상한 유리잔을 내밀었다.


“..누..누구..세요..??”


A는 긴장으로 말라붙은 목구멍을 간신히 움직였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겁에 질린 어린 염소처럼 우스꽝스러웠다.


“너는 참.. 말을 안 듣는구나. 입을 찢어서 넣어주랴?”


마주하기도 섬뜩한 존재가 간담이 서늘한 말을 꺼내니 A는 온몸의 피가 싹 빠져나가는 듯했다. 손이 덜덜 떨려 줄자 본 통이 후두둑 떨어졌다. A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존재는 A의 손이 빈 걸 확인하고 빈손에 유리잔을 억지로 욱여넣었다.


“자, 이제 얼른 마셔.”


유리잔을 손에 쥐니 A의 손이 점점 더 크게 덜덜 떨렸다. 유리잔 속 수상한 음료가 사방으로 요동쳤다. 넘실대다가 곧 바닥으로 흘러내리니 존재는 차갑고 딱딱한 손으로 A의 손을 감쌌다. 온기나 말랑함은 전혀 없는 흡사 시체의 손 같았다. 크기가 성인 남성 손의 2배에 달할 만큼 커서 A의 손과 유리컵을 감싸고도 남았다. 존재는 A의 손과 유리컵을 쥔 채 A의 입에 가져다 댔다. A는 귀신에 홀린 듯 유리컵 속 정체 모를 음료를 벌컥벌컥 마셨다. 혀를 타고 목구멍으로 쏟아지는 음료의 맛은 둘이 먹다 둘 다 죽고 동네가 다 전멸해도 이상하지 않을 맛이었다. 독약이 아닐지 합리적 의심이 들었지만 이미 뱃속으로 전부 쏟아낸 후였다.


쿨럭-! 쿨럭-!


A는 역하게 올라오는 음료의 냄새에 연신 기침했다. 비린 첫맛부터 밍밍하면서 느글느글한 끝맛까지 현세의 맛이 아니었다. 죽음을 음료로 만든다면 이런 맛 아닐까 할 만한 그런 맛이었다.


“좋은 말로 할 때 진작 마실 것이지..”


존재는 귀찮은 듯 유리잔을 빼앗아 싱크대에서 물로 헹궜다. 유리잔을 탁탁 털어 싱크대 선반에 올려두었다. 여전히 기침하는 A를 돌아보며 하찮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존재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거실의 소파에 늘어지듯이 몸을 뉘었다.


“저, 저기요..! 도대체 누구세요..?”


거의 울 지경에 이른 A는 애원하듯 존재에 물었다. 구강을 맴돌며 계속 새로운 냄새로 괴롭히는 음료의 맛 때문인지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하...”


존재는 자연스럽게 안주머니에서 은빛으로 반짝이는 담뱃갑을 꺼냈다. 통통하고 두툼한 몸체를 자랑하는 담배 끝을 칼로 도려내고 입에 물었다. 다른 쪽 주머니에서 화려한 장식이 세공되고 보석으로 치장한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여러 차례 빨고 내뱉기를 반복하자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네 생명의 은인이시다..”

“네..?”


당당하다 못해 뻔뻔의 경지에 오른 오만불손한 태도였다. A는 순간 공포와 떨림조차 잊었다. 존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거푸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내뱉기를 반복했다. 거실은 어느새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점액질을 토하던 날, 내가 널 구했지.”


담뱃대 길이가 새끼손가락 정도가 되자 존재는 담뱃갑을 열어 뚜껑 아래쪽에 담뱃불을 지져서 껐다. 더욱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렀다. A는 눈이 따가워 눈물이 찔끔 났다.


“그러니 맛있는 걸 내놓아라.”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는 호랑이도 아니고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봉변이었다. A는 벙찐 채 여유롭게 소파에 늘어진 존재를 쳐다보았다. 존재는 A가 옴짝달싹 않자, 주방과 거실을 번갈아 가며 손가락으로 까닥까딱 가리켰다.


“아...... 일단.... 누구시라고요?”


시야를 가리는 담배 연기를 휘휘 저으니 농도 짙은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텁텁한 공기 질에 A가 눈살을 찌푸리자, 존재는 즐겁다는 듯 껄껄댔다.


“너,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소파에 늘어졌던 존재는 상체를 일으켜 몸을 바로 했다. 앉아 있지만 상체 길이만 대한민국 여자 평균 키를 훌쩍 넘어섰다. 똑바로 앉아 몸가짐을 바로 하고 재킷의 주름을 탁탁 털고 양팔을 한 번씩 쓸어내렸다. 소파에서 책장에 닿을 만큼 비정상적으로 긴 다리를 번쩍 들어서 다른 한쪽 다리 위로 자연스럽게 올렸다. 얹은 다리 위로 양손을 포갠 후 시선을 돌려 A를 보았다.


“소개하지. 나는 밤의 세계의 제 2의 지배자, C이다.”


황당한 상황보다 황당한 자기소개에 A는 눈만 껌뻑거렸다.


“..누구요?”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내가 아무나 만나고 그러는 귀신이 아니야.”

“..귀신이요?”

“귀신 처음 듣진 않을 거 아냐. 여기도 귀신 있잖아.”

“그렇긴 한데.. 귀신이요?”


A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C의 요모조모를 뜯어보며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알던 거랑 많이 다른 외형에 알던 것과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원래 막 험상궂은 인상에 피 흘리고 잠깐 보였다 사라지고 이래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럴 줄 알았다. 도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아직도 하는 건지.. 200년 정도 울궈먹었으면 귀신 외양도 업그레이드 해줄 때가 되지 않았나? 지들은 스마트폰 쓰면서 귀신은 왜 맨날 똑같을 거라고 생각해? 아주 고루한 발상이야.”

“..그래서 진짜 귀신이라고요?”

“그래. 그것도 제 2의 지배자라고. 밤의 세계 생물들도 소멸하기 전까지 한 번 볼까 말까 한다고. 너 지금 얼마나 희귀하고 대단한 귀신을 마주하고 있는지 알아?”


C는 연신 믿지 않는 듯한 A를 향해 열변을 토했다. 물론 A는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현실이 현실 같지 않아 그저 멍할 뿐이었다.


“밤의 세계요..?”

“아! 그래, 밤의 세계. 너 아무것도 모르면서 밤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 어떡하냐? 그날 내가 골목에서 널 발견하지 않았으면 그대로 밤의 세계 생물 밥 될 뻔했어.”


문득 뇌리에 목구멍부터 차올라 숨을 틀어막았던 점액질 덩어리가 떠올랐다.


“점액질 덩어리가 밤의 세계 생물이라고요?”

“아니, 그건 아니고. 점액질은 밤의 세계 생물이 사용하는 도구 같은 거야. 거기서 널 발견한 밤의 세계 생물이 널 사냥하려고 한 거지. 그런데 내가 딱 그 자리에 있던 덕분에 널 살렸지. 켈켈켈-”


C는 특유의 낮고 짙으며 탁한 웃음소리를 냈다. 늑대나 큰 갯과 동물의 그로울링처럼 울림이 깊은 소리였다.


“사냥이요?”

“자주는 아닌데, 가끔 해. 너처럼 균열로 보이는 사람들.”

“균열이요?”

“아..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나...”


꽤 난감한 듯이 이야기했지만, C는 즐거워 보였다. 혼자 생각에 빠져 흥얼거리며 손가락을 꼽았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 역시 창백하고 핏기가 없어 장난감이나 소품처럼 보였다. 흥얼거리는 A의 손가락이 신이 나 리듬에 맞춰 까딱이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결정했는지 허리를 세우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좋아. 나를 봐.”


A는 영문도 모른 채 C를 마주 보았다. C는 커다란 모자 끝을 꼬챙이 같은 손가락 끝으로 살포시 밀어 올렸다. 모자 아래 짙은 그림자가 조금씩 물러나며 C의 얼굴이 드러났다. A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자 아래 그림자 속에 잠긴 C의 얼굴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헉...!!!!


“켈켈켈- 이래야 재미지! 어떠냐, 내 얼굴이!”


A의 반응을 예상한 것처럼 C는 즐거워 죽겠다는 듯 웃으며 모자 끝을 가볍게 잡아당겨 벗겼다. 모자 아래 감춰두었던 C의 얼굴은 창백하고 파리한 피부뿐만 아니라 문자 그대로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허공에 뜬 것처럼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시커멓고 어두컴컴한 공간이 자리 잡았다. 무엇이라도 부유할 것처럼 얼굴이 그냥 존재했다. 정확히 A는 왜 얼굴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뻥 뚫린 공간처럼 보였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C의 표정이 보였다. 눈에 직접 보인 건 아니었으니 느꼈다고 하는 것이 정확했다.


“켈켈켈켈-!!”


미친놈처럼 웃어대던 C는 신났는지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구부리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췄다. 탭댄스와 절망적인 퍼덕거림 사이 어디쯤의 춤이었다. A는 기괴한 광경에 판단력을 상실할 지경이었다.


“자, 잠깐..!! 담배는 어떻게..?”

“이거 보라고! 인간의 한계가 드러난다니까! 켈켈켈-!! 코하고 입이 없으니까 담배필 수 없을 것 같지?! 켈켈켈-!!”


어떤 부분이 C의 즐거움을 자극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C는 점점 더 흥이 한껏 올라 춤이 격렬했다. 긴 팔다리가 사방으로 뻗치며 가구를 쓰러트렸다.


“그만!!!!!!!!!!”


소리를 빽 지르니 C가 얼음이 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멈췄다. 뻥 뚫린 허공의 얼굴 자리에 있을 리 없는 눈을 소처럼 껌뻑이는 C의 표정이 보인 듯했다. 다행히 괴상망측한 1인 쇼는 금세 막을 내렸다. A는 진절머리 치며 C를 소파로 밀어뜨렸다.


“켈켈켈-”


엉거주춤 소파에 안착한 C는 음흉하게 웃었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A는 엉망진창이 된 거실을 쭉 둘러보았다.


“원래 귀신은 물건 못 만지지 않아요? 투명해서 비켜 가고 그러지 않아요? 네?”

“너네 동네 인간들은 원래 치렁치렁한 옷 입고 말 타고 다니지 않았냐, 원래? 신발도 짚신 엮어 신던 거 아니야?”


A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자 C는 연신 즐거워 죽겠다는 듯 음흉하게 웃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즐겁다, 즐거워!”


혼란스러운 상황에 거친 숨을 몰아쉬던 A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정신이 점점 아득해졌다. 한참을 웃던 C는 긴 팔을 뻗어 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집었다. 챙 끝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어내고 형태를 잡은 뒤 살포시 머리에 얻더니 꾹 눌러 썼다.


“재밌군. 이쯤 하고, 어디까지 말했더라?”

“어, 얼굴이.. 밤의 세계가..”

“그래! 그날 말이야. 갑자기 새로운 균열이 생긴 거야.”

“균열이요..?”

“그래, 균열! 몇백 년 만에 생긴 일이라 밤의 세계도 난리가 났지. 나도 관리 차 지나던 길이었고.”

“그 균열이 어딨는데요..?”


C는 손가락 끝으로 A 머리 근처 허공을 가리켰다.


“거 봐. 아까부터 입을 쩍 벌리고 있는데 알아차리지도 못하잖아. 켈켈켈-”


A는 C의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혈색 없는 쇠꼬챙이 같은 푸르딩딩한 손가락 끝은 아주 요상한 구멍을 향했다. 그것은 C의 얼굴처럼 허공에 구멍이 뻥 뚫려 입을 벌리고 있었다. 오만가지 색이 얽혀 엎치락뒤치락 움직이는 모양이 만화경(칼레이도스코프, 기다란 거울 통 안에 그림, 장신구 등 장치를 넣어 보는 장난감)을 빙글빙글 돌리는 듯했다. 그 안에서 아주 불쾌한 냄새가 진동했는데, 목조 건물의 오래된 2층 창고의 쿰쿰함과 사용 후 그대로 벽장에 보관한 이불의 쩐내가 합친 듯한 냄새였다. 코가 찡 할 만큼 지독한 냄새는 한번 맡기만 해도 후각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이게 무슨..?”


그때 C가 팔을 뻗어 허공에 생긴 균열의 쩍 벌어진 입을 바느질 하듯 휘적휘적 그었다. 그러자 벌어진 균열이 끝자락부터 조금씩 입을 오므렸다.

작가의 이전글운명을 위하여(For the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