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이번 생엔... #1 눈을 감으면 도시는 물에 잠긴다 -8
”자, 일단 눈 감아봐.“
”네?“
C는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하늘을 올려 보았다. 뉘엿뉘엿 해가 지면서 멀리서부터 어둑했다. 노을 지면서 장대한 빛띠가 하늘을 켜켜이 물들였다. 곧 해가 완전히 질 요량이었다.
"얼른 눈 감아봐."
A가 벙찐 얼굴로 의심의 눈초리를 띄고 경계했다.
”다 설명할 테니까 얼른 눈 감아.“
C는 창가에서 떨어져 소파에 깊숙이 A 곁에 앉았다. A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았지만 몇 번 C를 위아래로 훑어 보고 하는 수 없이 눈을 감았다.
”허튼수작 부리기만...!“
꾸룩...!
익숙한 물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A는 등골이 서늘했다. 발가락 끝으로 피가 쑥 빠지는 듯 온도가 뚝 떨어졌다.
”앞으로 지겹도록 일어날 일이니까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꾸룩...! 꾸르, 꾸르륵...! 쏴아-!!
C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발밑에 물살이 쏟아졌다.
”뭐...?!“
”눈 감아.“
깜짝 놀란 A가 펄떡 뛰어오르자, C는 재빠르게 A의 눈을 가리고 자리에 앉혔다.
”물론 무섭고 놀랍겠지만 잠시만 기다려, 알겠지?“
발끝부터 차오르는 물살이 금방 발목, 정강, 무릎까지 차올랐다. 꿈인가 싶었지만 다리에 감기는 축축한 감촉이 진짜였다. 깜짝 놀라 A의 호흡이 들쭉날쭉 불규칙적으로 가빴다.
”무, 물?! 집에 물이 차는데요?!!“
거실 바닥에 다리를 휘저으니 물살이 이리저리 요동쳤다. 당황해서 발버둥 치자 그럴수록 눈을 가린 C의 창백하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A를 꾹꾹 눌러댔다.
”알아, 알아. 기다려.“
태평하기 짝이 없는 반응에 A는 기가 찼다. 물살은 더욱더 빠르게 차올라 벌써 소파에 앉은 A 허리춤을 넘어섰다.
”쉬- 얼마 안 걸려. 곧이야, 곧.“
”흡-!!!“
수위가 목을 넘어 턱 끝까지 차차 A는 안절부절 난리가 났다. C는 발버둥 치는 A를 더욱더 강하게 꾹꾹 누르며 달랬다. A는 숨을 크게 마시고 호흡을 멈췄다. 잠시 후 A와 C는 전부 물에 잠겼다.
”읍읍읍-!!! 읍읍-!!!“
머리끝까지 전부 잠기고 나서야 C는 손을 뗐다. 눈이 번쩍 뜨자 온통 물에 잠긴 거실과 집 내부가 들어왔다. 물건들은 모두 제자리에 그대로였지만, A는 강한 물살에 쓸려 소파 위로 부유했다. 엉덩이가 가볍게 둥실 떠오르니 자연스럽게 머리가 아래로 내려오며 빙글빙글 돌았다. C는 여전히 소파에 편하게 앉아 부유하는 A를 구경했다.
”으으읍-!!! 으으으으읍-!!!!“
바싹 긴장한 A는 금방 숨이 딸렸다. 입을 꽉 틀어막았어도 물살이 점점 거세져 이대로 집에서 익사할 판이었다. A는 사력을 다해 거실 창을 향해 헤엄쳤다. 창문을 열고 먼저 밖을 살폈다. 집 안뿐만 아니라 집 밖도 마찬가지였다. 거리부터 건물까지 전부 물이 차올라 해저 도시 같았다. 놀라운 건 뒤로한 채 A는 일단 살고 봐야 했다. 창을 빠져나가 수면을 원래 하늘이 보였던 수면을 향해 팔다리를 휘적였다. 어둑한 하늘에 달이 떴는지 은은한 노란빛이 물결마다 맺혀 반짝였다. 시원스럽게 앞으로 나아갔어도 수면은 멀어질 뿐 무한한 우주처럼 한없이 제자리걸음이었다. 숨을 오래 참은 탓인지 점점 시야가 흐렸다. 사지에 힘이 빠져 조금씩 느려졌다. 앞으로 나아가는 듯 물결에 쓸려 뒤로 밀려났다. 해류에 실려 가는 대로 사는 미역 줄기가 된 기분이었다.
”한껏 힘 써봤어?“
달그림자가 아득히 멀어질 때였다. 이제 죽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쯤 익숙한 C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A는 화들짝 놀라 눈을 돌렸다. C는 긴 팔다리로 물고기처럼 물살을 휘저으며 A 뒤에서 자유롭게 유영했다. 흐린 눈으로 무력하게 바라보니 얼굴 위치에 자리한 허공이 장난스럽게 낄낄대듯 통통 튀었다.
”아직도 모르겠어?“
C는 늘어진 A의 오른손을 마주 잡고 왼손으로 허리를 둘렀다. 자연스럽게 빙글빙글 돌면서 한발씩 발을 디디니 둘은 천천히 아래로 하강했다. 까마득한 환상 속 별세계를 거니는 듯했다. A는 C의 리드에 따라 나풀나풀 떨어지는 꽃잎처럼 물결 따라 움직이며 춤을 췄다.
”너...“
둘은 금방 A의 집 창가에 내려앉았다. A는 여전히 먼 곳을 보는 듯 멍했다. C는 A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숨 쉴 수 있어. 숨 쉬어, 숨.“
곧바로 창백하고 가느다란 손으로 A의 양 뺨을 가볍게 찰싹 쳤다.
”흐-억?!“
눈앞에 번개가 번쩍 하며 A는 정신이 들었다. 숨을 들이마시자 입 속에서 물보라가 보글보글 튀어나왔다. A는 질겁하며 서둘러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적당히 하고 들어와.“
C는 먼저 창을 통해 거실로 들어갔다. A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틀어막은 입에서 슬며시 손을 떼었다. 물을 한 동이는 마셨지만 목구멍 안에 이질감은 없었다. 숨을 마셨다 뱉었다 반복하니 물거품이 우르르 쏟아졌다 삼켰다 할 뿐이었다.
”와-!!! 뭐지, 이건?“
”그만하고 얼른 들어와. 나머지 설명할게.“
A는 신기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물거품을 연신 뱉어 보았다. C의 닦달에 A도 창을 통해 거실로 뒤따라 들어갔다. C는 소파에 앉아 A를 기다렸다. A는 자연스럽게 C 옆에 자리했다.
”뭐야? 이거? 꿈인가? 꿈인데, 이거?“
”꿈 아니야.“
”이거 꿈에서 본 건데요?!“
”그러니까 둘 다 꿈이 아니라니까.“
”그럼 꿈인 줄 알았던 것도...?“
”보아하니 이미 균열의 전조가 있었네. 꿈은 언제부터 꾼 거야?“
”반년쯤?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얼마 안 됐어요.“
”그럼 반년 전부터 밤의 세계 생물이 한 둘씩 주변에 돌아다녔을 거야. 뭐 이상한 거 없었어?“
”이상한 거라면 어떤...?“
”고약한 냄새나, 뜬금없는 장소에 물웅덩이나, 있을 수 없는 곳의 물고기나, 이런 거.“
A는 곰곰이 지난 6개월을 떠올렸다. 몇 개월 전부터 집에서 풍기던 악취가 떠올랐다. 어둡고 쿰쿰한 냄새로 대청소를 몇 번이나 했다. 창고, 화장실, 주방, 세면대까지 구석구석 살펴보았으나 냄새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특히 물 쓰는 곳마다 애써 꼼꼼하게 보았으나 근본적 원인을 찾지 못해 포기했다.
”집에서! 악취! 아!“
”거 봐. 뭔가 있었을 거라니까.“
”아니, 근데 집에서 나는 냄새만 가지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긴다는 걸 어떻게 알아요?“
”뭐, 그렇긴 하지.“
C는 머쓱한지 어깨를 으쓱했다.
”우주엔 네가 알고 있고, 살고 있는 현재 이 세계 외에 셀 수 없이 많은 차원이 있어. 그중에 지금 이게 바로 밤의 세계야. 내가 속한 세계이자, 네 세상에서 신과 귀신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머무는 세계지. 한 마디로 죽음의 세계라고 불러. 균열이 없다면 네가 절대 모르고 살았을 세계란 말이지.“
”그럼 제가 영 능력자가 된 거예요? 귀신 보고 퇴마하는?“
”그건 아니야. 진짜 영 능력자나 무당이었으면 균열이 생기기도 전에 잡아먹혔거나 미쳤을걸?“
”그럼 뭐예요? 균열은 왜 나타난 거고, 저는 왜 이런 일을 겪는 거예요?“
”밤의 세계는 네가 사는 세계의 조각과 같아. 떨어져 나온 일부분이지. 네가 사는 세계와 밤의 세계는 애초에 하나였으니까 두 세계 간에 상호작용이 원인일 거야. 세상 만물 모든 일에는 인과 관계가 얽혔고 여기 네 근처에서 균열이 생긴 데에도 어떤 힘이 작용했을 거란 말이지.“
”그게 무슨 뜬구름 같은 소리예요? 그러니까 정확히 이유를 모른다는 말인가요?“
”안타깝지만 이유는 너만 찾을 수 있어. 너만 알 수 있고, 너만 확신할 수 있지. 설령 내가 그 이유를 짐작한다 해도 함부로 발설했다가 우주의 흐름에 영향을 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어. 징검다리를 건널 때 하나하나 밟아야 지나갈 수 있는 것처럼, 다리 하나 빠지면 모든 일이 틀어지거든. 쓸모없는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가 인연을 다시 짓는데 드는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업을 닦아야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면 안 되지 않겠어?“
”결국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네요.“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밤의 세계가 뭔지 설명해 주는 존재가 하나라도 있는 게 어디야?“
”하... 그러면 밤의 세계 생물은 대부분 신이나 귀신인가요?“
”음, 그건 또 아니야. 옛날에나 신이나 귀신이 대부분이었지, 지금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든 집착과 집념이 대부분이야. 대화가 일절 안 된다는 면에서 신이나 귀신보다 오히려 골치 아파. 더 조심해야 해. 거대한 에너지만 보면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달려들고 보니까.“
”그래서 아까 밤의 세계 생물이...“
”밤의 세계가 이 세상에 나타난 거 자체도 위험하지만, 특히 네 경우 꿈이라는 무의식으로 연결됐다는 건 훨씬 위험해.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텐데 당연히 그것도 네가 찾아야 하지.“
”... 하하하. 그렇군요.“
”나중에 이유를 알고 나면 너희 인간들이 신이라 일컫는 자연의 법칙과 흐름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 않겠어?
“참 어렵네요. 정리하자면, 균열이 생긴 이유는 직접 알아봐야 하고 밤의 세계 생물은 무척 위험해서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고 지난날처럼 갑자기 나타난 밤의 세계 생물에게 습격받을 가능성도 높고 무의식은 밤의 세계에 잠식당하고 있으나 이유는 알 수 없으니 직접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균열은 수시로 열리니 언제든 밤의 세계 생물을 대비해야 한다는 거 빼먹었어.”
“... 유일한 협조자는 제 상황을 꽤 즐기고 있고요...?”
“에이~ 즐기기는! 도울 수 있어서 내가 얼마나 뿌듯한데! 이 친구, 참!”
“그럼 저는 또 습격받고 정신을 잃을 수 있겠네요.”
“자주 일어나지 않을 거야. 아무리 신이나 귀신처럼 강력하다 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공격하기는 힘들어. 아마 습격보다 운명이 뒤틀릴 때 일어나는 현상의 일종일 거야. 별이 역행하듯이 에너지가 거꾸로 치솟으며 육신이 충격을 받은 거지. 이제 본격적으로 균열이 열리면서 밤의 세계 생물이 나타날 거야.”
“... 그렇군요...”
“뭐, 죽을 뻔하기는 했지만, 때마침 내가 그 자리에 있었잖아. 살았으니 당장 죽을 운명은 아니었던 거지.”
“... 참, 도움 되는 말이네요~ 덕분에 안심했습니다~”
A와 C 사이에 물거품만 하릴없이 방울방울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