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서 만나자
1화 보고 오기
여름이 왔다.
학교 창가에 앉아 업무를 하고 있으면 매미 울음소리가 찌르르 찌르르 고막을 찌르듯 우렁차게 들려온다. 정말이지 이 동네는 곤충마저 우당탕탕 천방지축이다. 앞으로 또 몇 번의 여름을 이곳에서 보내게 될까.
작년 겨울, 다행히 이사 갈 일은 생기지 않았다. 여전히 집주인은 아주머니고 두 누나들이 얹혀사는 것 같은데, 그 난리는 왜 쳤는지 모르겠다.
어제는 편의점에서 다정누나를 마주쳤다. 음료 냉장고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맥콜을 발견하곤 추억에 젖어 손을 내밀었는데 하얀 손이 동시에 들어왔다. “아아악!” 다정누나임을 깨닫고 귀신이라도 본 듯 소리 질렀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정통으로 마주친 건 그 사건 이후로 처음이었다. “연하야, 안녕.” 다정누나는 옅게 웃고는 맥콜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아아, 나의 다정누나. 여전히 천사 같으시군요.
하지만 이제 누나에 대한 마음은 접었다. 투명한 피부, 자연 갈색의 눈동자, 가녀린 분위기, 착하디 착한 마음씨. 이미 완벽한 여자였던 다정누나가 무려 네이버의 웹툰작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 같은 평범한 남자는 더 이상 넘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단 뜻이다. 근데 뭐, 생각보다 슬프진 않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성적인 감정을 넘어 팬심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호정누나는 출근하는 아침에 마당 대문에서 자주 마주친다. 항상 까만 칼정장을 입고 머리카락 한 올 흘러내리지 않는 완벽한 포니테일을 하고선 나타난다. ‘안녕하세요’ 떨떠름하게 인사하면 ‘야, 나 오늘 3시간 잤어’라며 묻지도 않은 정보를 알려주며 바쁘게 가던 길을 간다. 하긴, 노무법인 출근에 유튜브 전문직 채널 출연에, 듣자 하니 사회보험법 강사 준비도 하고 있다는데. 잠이 모자랄만하다. 돈도 꽤 벌겠지? 부럽다.
누나들은 성장하고 변화하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아 괜히 공터에 남겨진 기분도 든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각각의 선택, 생각, 가치관만 있을 뿐 옳고 그른 건 없으니까.
그저 지금처럼 세상 사람들 각자의 자리를 존중하며 살아가고 싶다. 나는 나대로 타인은 타인대로.
그러다 문득 외로워질 때면 우리,
중간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