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DONGYOON_HAN / 2014년 10월 여행 중
어릴 적 지지고 볶고 레슬링하고 뒹굴며 싸우고 울고 웃으며 놀던 사촌 형들이 있다. 언제나 명절이 기다려졌고 형들은 언제나 명절의 내 기대에 부응한 나머지, 명절 마지막 날에는 형들과의 이별이 아쉬워서 질질 울곤 했었다.
그중 장난기가 가장 심한 친척형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장난기가 많고 친구들을 잘 놀리는 습성은 바로 어릴 적 친척형에게서 배운 조기 교육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고하를 막론하고 장난치고 들이받으며 사고 치고 싸우던 형은 미국에서 지낸 지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가정을 꾸리고 난생 본 적 없던 두 아들까지 생겨서 네 명의 가족을 꾸리고 살고 있는 형을 만나러 텍사스의 댈러스로 향했다.
10년 만에 공항에서 나를 마중 나온 형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과 변함이 없었다. 뒤통수를 지나는 전율과 함께 너무 반갑게 형을 만나고 역시나 '이건 무슨 거지야 뭐야, 대체 왜 이리 얼굴이 썩었어!'라는 첫마디와 함께, 형이 사는 - 미국의 전형적인 평범한 중산층의 모습인 - 작은 뒷마당도 있는 이층 집에 도착했다. 약 반년 간, 집과 같이 편안한 곳에 머물지 못했던 나는 거지 형상을 한 모습을 지닌 채 첫째 조카 영민이의 2층 방을 빼앗아서 여장을 풀었고,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멋진 집에서 여행을 정비하고 휴식을 갖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갔던 기간이 가을이라 그런지 달라스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사람을 대할 때만 나오는 내 특유의)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지치지 않는 조카들과 놀아주는 시간을 이러한 축제들로 인해 보다 더 즐겁게 함께할 수 있었다.
적지 않은 시간을 형의 가족들과 함께 했다. 아니, 나의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Daytime에는 조카들과 뒹굴고 공부하고 게임하며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는 형수님과 함께 주구장창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함께했다. 또한 상상 이상의 뛰어난 요리 실력을 지닌 형 덕분에 8kg 가까이 빠졌던 살이 다시 원상복구 하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오만가지 단어들이 머릿속을 지나가도, 결국은 '돌아갈 곳'이라는 따듯한 단어로 귀결된다. 어떠한 사랑을 주어도 부족하다고 느끼고, 어떠한 사랑을 받아도 더 큰 사랑을 주고 싶은 존재가 바로 가족이다. 형과 형수, 그리고 조카들을 보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혼자서만 반년 이상의 시간을 여행으로서 그리고 결핍의 상태에서 마주하게 되니 그 소중함이 더욱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정혼기라는 나이를 거치고 있는 지금, 좋은 가정을 맞이하고 싶고 따듯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 나를 따듯하게 대해준 미국 가족과 함께 하면서 한 걸음 더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