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시계 산업을 실감하다
올해 101번째를 맞은 세계 최대의 시계주얼리 박람회 바젤월드(Baselworld)에 다녀왔습니다. 매년 3월경 스위스 바젤시에서 열리는 이 박람회는 한 해의 시계 트렌드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죠. 저 역시 스위스 바젤로 날아가 5일동안 바젤월드를 취재하고 왔습니다. 하지만 제 시계 지식은 전문 매체나 매니아(이쪽 세계가 알고보면 엄청난 덕후의 세계...) 분들에 비교하면 기계식 시계 입문자 정도지요. 깊이 관심있는 분들께는 이 글이 밍밍할 수도 있겠습니다.
2018 바젤월드에서 공개된 시계들은 다양한 매체에서, 또 전문지에서 자세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지난 한달 내내 저에게 배당된 시계 기사를 쓰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디테일한 시계 이야기보다는 태어나 처음가본 바젤월드 그 자체에 대한 후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바젤월드의 시작은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파리만국박람회처럼 일종의 럭셔리산업박람회였던 제 1회 무바:슈바이처 뮤스에서 시계와 주얼리 섹션을 개설한 것을 시작으로, 점차 규모를 키우며 독자적인 박람회로 성장했으며 2003년에 이르러 ‘바젤월드’라는 공식 명칭을 발표합니다. 공식 명칭을 가지기까지 90년에 가까운 오랜 시간이 걸린 데에는 기계식 시계 역사의 우여곡절이 관련있습니다.
태엽으로 작동하는 기계식 시계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지만 오랜 세월동안 시계는 극소수의 귀족만이 소유할 수 있는 사치품이었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공공재에 가까웠죠. 유럽의 도시에 가면 성당이나 관공서 꼭대기에 커다란 시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 시계를 기준으로 하루를 꾸렸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하자 조금 더 많은 개인들이 포켓워치라고 부르는 회중시계를 주머니에 넣어 다녔습니다. 근대 과학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한 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에는 시계가 전문장비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이때 시간을 측정하는 크로노그래프 기능이 특히 발전합니다. 시간을 측정할 수 있으면 거리와 속도를 계산할 수 있으니 당시 크로노그래프 시계는 항해와 항공 분야의 필수 장비였습니다. 최초의 남성용 손목시계인 까르띠에의 산토스가 탄생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 1904년, 루이 까르띠에가 비행기 조종사 산토스 뒤몽을 위해 조종 중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시계를 고안한 것이 산토스 드 까르띠에 워치의 시초입니다. (최초의 손목시계가 아닌 최초의 '남성용' 손목시계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성들은 오랜 과거부터 회중시계가 아닌 손목시계를 착용했는데, 대부분이 다이얼을 보석이나 장신구로 가린 주얼리 워치였습니다. 당시에는 여자가 시계를 보는 것이 '어디감히 여자가'의 범주에 있었기 때문입니다..흠좀무..)
글이 삼천포로 빠지는 것 같습니다만, 계속하자면 기계식 시계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작전을 수행하는 군인이 시간을 착각하면 대형참사가 벌어지니까요. 때문에 시계는 군인들의 필수보급품이었습니다. 이 때 해군, 공군, 육군의 특성과 야간작전 등을 고려해 방수나 야광 도료같은 특수 기능이 엄청난 발전을 이뤘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1970년대에 들어서 전자식으로 작동하는 쿼츠 시계가 발명되었고,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식 시계는 대폭망.. 의 길을 걷습니다.스위스 시계 제작자들의 대부분이 실직자가되었고 브랜드들은 줄도산했습니다. 이 여파가 어찌나 컸던지 지금도 이 사건을 '쿼츠 파동'이라고 부릅니다.
우여곡절 끝에 쿼츠 파동에서 살아남은 기계식 시계 브랜드들은 새로운 활로를 찾습니다. 정확성이나 휴대성, 가격경쟁 측면에선 쿼츠 시계와 비교가 불가능했으므로 아날로그, 장인정신, 헤리티지를 내세워 사치품 시장에서 서서히 주목을 받게 됩니다. 기계식 시계 브랜드들이 다시 좀 먹고 살만해졌을 때가 되서야 바젤월드가 공식 명칭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겁니다.
다시 바젤월드 이야기로 돌아와서, 올해의 신제품들은 빈티지 시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거나 혹은 있는 그대로 복각하는 등 과거를 이야기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엄청난 하이엔드 브랜드가 아니라 럭셔리-매스티지 브랜드라도 이제 얼추 100년의 역사를 갖기 시작했으니까요. 패션계나 기계식 시계나 190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딱 100년의 역사를 되풀이하며 먹고사는 움직임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투머치 토커인지라 바젤 문턱에도 못가고 글을 맺음하게 생겼네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