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청패션이 다시 한 번 하이 패션의 중심에 섰다.
패션계의 클래식이 LBD(리틀 블랙 드레스)와 블레이저라면 현실 세계의 클래식은 데님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런데 '현대인의 유니폼'이라 불리는 이 데님 아이템을 이번 시즌부터는 조금 새롭게 봐야 할 것 같다.
시작은 캘빈 클라인이었다. 뼛속까지 미니멀리스트인 라프 시몬스는 캘빈 클라인을 통해 가장 미국적인 스타일을 정제하고 있는데, 새로운 광고 캠페인 모델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셀러브리티 가족인 카다시안&제너 자매등를 발탁했다. 그리고 오직 속옷과 데님만을 입은 그녀들의 모습을 공개하며 돌아온 데님 시대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뿐만 아니다. 전세계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4대 도시의 패션위크에서도 데님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러한 데님의 급부상은 사실 일정 부분 예측된 흐름이다. 지난 몇 시즌간 90년대를 추억하는 복고 움직임이 뚜렷하고 지속적으로 있어왔고(특히 러시아의 고샤 루브친스키가 많은 기여를 했다. 오랫동안 문화적으로 봉쇄된 러시아의 스트릿 패션은 199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 것같았고 그 부분이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어필했다), 90년대는 데님의 시대였으니까.
리바이스, 갭, 디젤, 게스 등 이름만 들어도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르는 데님 브랜드들이 1990년대에 대히트를 쳤고, 상의와 하의를 모두 데님으로 통일하는 일명 '청청' 패션이 크게 유행한 것도 이 시기다. 찢어진 청바지를 할머니가 밤새 꿰매어 놓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이때쯤 등장했었다. 그만큼 데님은 당시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어른들은 이해못하는 젊은이들의 '잇'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18년이 도래한 지금, 런웨이 위에서는 다시금 '청청' 패션이 주목받고 있다. 과거와 지금의 다른 점은 지금의 올-데님 룩은 지난 20년간 발전한 다양한 기법을 적용해 훨씬 다채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의 데님이 반항심과 호기심으로 가득찬 열정적인 젊은이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지금의 데님은 직장인부터 보헤미안까지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킨다.
샤넬은 매우 정밀한 워싱 기법을 통해 데님에 은은한 스트라이프 패턴을 표현했고 오스카 드 라렌타는 멀리서보면 물감을 뿌린 듯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입체적인 플라워 모티프가 섬세하게 표현된 데님 룩을 선보였다. 이 외에도 자수와 주얼을 잔뜩 장식한 아퀼라노 리몬디, 대리석 표면처럼 자연스러운 스톤 워싱을 가미한 스텔라 매카트니 등 정교하고 새로운 올-데님 룩이 런웨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이번 시즌 데님 트렌드의 또 다른 포인트는 바로 해체주의적 접근이다. 세계의 데님 공장인 미국에서는 지난 몇 년간 데님 가공에 사용되는 엄청난 양의 물이 환경 오염의 원인이 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리/던(RE/DONE)이나 E.L.V 데님, 트라이아키(Triarchy)같은 업사이클링 데님 브랜드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두 벌 이상의 빈티지 데님을 조합한 업사이클링 데님 아이템은 카이아 거버와 지지 하디드 같은 톱 모델들이 즐겨 입으면서 단숨에 유행하기 시작했고 그 자체로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다. 이 기류는 하이패션에도 그대로 전달되어서 두 개의 치마를 겹쳐 입은 듯한 언래블의 스커트, 서로 다른 원단을 금속 아일릿으로 연결한 디올의 팬츠 슈트, 각 부분을 단추로 이어붙여 입을 수 있는 알렉산더 맥퀸의 조립식 재킷 등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한편, 기존의 데님이 갖고 있던 ‘캐주얼’의 틀을 깨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색이 밝을수록 활동적인 분위기를 내는 데님의 특성을 역으로 이용해 거의 블랙에 가까운 다크 진으로 차분하거나 이지적인, 혹은 관능적인 분위기를 내는 것이다. 특히 펜디와 톰 포드, 머글러의 착장이 주목 받고 있는데 그 비결은 스티칭을 적절히 활용했다는 점이다. 화이트 컬러의 스티칭으로 모던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오렌지 컬러의 스티칭은 조금 더 캐주얼한 분위기를 내는 식이다. 이렇듯 데님의 소재와 디자인의 스펙트럼이 무궁무진하게 넓어진 지금이야말로 옷장에 한 두벌쯤 있는 데님 아이템을 새롭게 업데이트할 최적의 시기가 아닐까.
** 이 글은 <헤리티지 뮤인> 7월호에 실린 기사를 재구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