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디스크가 터진 내 친구에게
최근 가까운 지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린 나이인데 디스크가 터졌다고 한다. 예전부터 고관절 근처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최근에 봤을 때도 잘 웃던 친구였다.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반사적으로 얼굴이 일그러지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게 생각난다. 오히려 친구는 이미 상황에 달관한 듯한 태도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괜찮아질 거라고, 나아질 거며 쾌유를 건냈지만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무언가 부족해 보였다. 아마 쉽게 괜찮아지지 않을 거고 앞으로 평생을 조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걸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굳이 꺼낼 필요도 없었던 말이었다. 아픈 상황을 공감해주는 일도 쉽지 않았다. 현재 내가 아프지 않고, 또 디스크라는 질환을 겪어 본 일도 없기 때문이다. 이 친구가 얼마나 아프고 힘들지 미루어 짐작만 할 뿐 아예 감이 오질 않았다.
현재 어린 나이에 회사에 병가를 내고 환자복을 입은 채 허리 통증으로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친구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친구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연로하셔서 불편한 거동 때문에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우리 할머니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몸은 좀 어때?라고 말하기보다 조금 더 상대에게 와 닿는 말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본다.
우선 내가 오랫동안 아팠던 때를 떠올려 본다. 그때를 되돌아보며 당시에 내가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기 위함이다. 야간 새벽일을 오랫동안 할 때였는데 매일 밤을 새우고 공기가 좋지 않은 환경에 있었다. 밥보다는 햄버거를 좋아할 때였고 불규칙적인 식습관을 유지하다 보니 몸상태가 점점 나빠졌다. 어느샌가 잔기침이 자주 나고 한번 심하게 기침이 나면 1분 정도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몸 전체적으로 면역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디스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인생에서 꽤나 오랫동안 몸이 안 좋은 상태를 유지하던 때였다. 기침을 참지 못하는 것에 꽤나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고 컨디션이 계속 저조해서 심리 상태도 우울했었다. 우울함이 가장 극심할 때는 이 시기에 두피 쪽에 혹 같은 염증이 사라지지 않아 외과에서 작은 수술을 받았던 때였다.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수술 후 귀 주변으로 왕창 붕대를 감은 후 사람들이 꽤나 차있던 버스에 타서 집으로 돌아갔다. 얼굴에 붕대를 감은 상태였는데 이상하게 쳐다볼 뿐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있는 게 불편하진 않았지만 그냥 자리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싶었다. 정거장마다 새롭게 버스에 타는 사람들이 나를 처음 보고 흠칫 놀라는 광경이 계속 불편하게 느껴졌다. 돌아가는 길에 친구에게 연락이 와 픽업을 온다는 말을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친구 차에 탄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집으로 갔었다.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니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는 게 떠오른다. 그때 나는 누군가 나의 상태를 알아주길 바랬다. 마치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처럼, 한 많은 사람처럼 내가 겪은 이 억울한 상황들을 누군가 들어주길 바랬다. 왜 억울하다고 여기는지는 조금 의아한 부분이다.
"염증은 보통 1~2주일 정도 지나면 없어져야 하는데 나는 한 달이 지나도록 없어지지 않더라. 내가 면역력이 안 좋아서 그런가 봐. 이렇게 된 데는 공기가 안 좋은 곳에 오랫 있어서 그런가 봐. 아! 그리고 매일 밤을 새워서 그런가. 아 맞다. 내가 햄버거를 자주 먹지.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어린 나이에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는데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어. 세상은 정말 불공평한 거 같아. 앞으로 계속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이런 식으로 속사포 랩으로 내 상태를 표현하며 나의 불만을 터트리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친구에겐 표현하지 못했었다. 위로를 하는 친구에게 나는 괜찮은 척 앞으로 나아지겠지라는 긍정의 기운을 보였다.
나의 사례를 되돌아보며, 아픔이나 통증을 느끼는 당사자에게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동반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한 번도 피우지 않았는데 폐암에 걸린 사람처럼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설사 아픈 원인이 그동안 몸을 계속 혹사한 것에 대한 결과일지라도 억울함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테니깐. 이런 관점에서 오랫동안 아픈 사람에게 위로와 격려, 희망적인 말보다 억울함이라는 감정을 기반으로 이야기하면 어떨까 싶다. 현재 느끼는 감정 중 억울한 감정들을 듣기 위한 질문을 던져 그 사람의 마음속 한을 풀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다.
"나 예전에 조금 오랫동안 아펐었을 때 있었는데 그때 뭔가 되게 억울하더라. 너는 좀 그러지 않아?"
"너 일한다고 맨날 야근하고 그랬는데, 운동할 시간도 없었고. 이렇게 갑자기 아프니 좀 억울하지 않아?"
"우리 할머니, 평생 자식 손자 키우느라 고생만 하셨는데. 이제 좋은 곳 놀러 가고 그래야 되는 다리가 아파서 제 마음이 아파요."
이 말이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고르고 고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