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장거리 출퇴근을 하던 시절, 강북에서 강남으로 넘어가던 출근길 아침엔 늘 예민해졌다. 찰나의 선택의 따라 내가 앉아서 가냐 서서 가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1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좁은 전동차 칸 안에서 내가 어떤 상태로 있는지는 오늘의 운세 같은 거였다. 경쟁을 뚫고 좌석에 앉은 날에는 왠지 하루가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곤 했다.
지하철 좌석에 앉는 날은 온몸을 맡기고 정신을 놓고 잠들 수 있었다. 가끔은 한 손으로 책을 들고 읽으면서, 서서 가는 사람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여유도 누릴 수 있다.
반면 서서 가는 날에는 이런 여유를 부리기 힘들었다. 버스 손잡이를 잡고 가다가 잠든 적이 있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정신을 놓다가 그 짧은 순간에 자이로드롭을 탄 것 같은 체험을 한 적이 있다. 반사신경이 아니었다면 온몸에 힘을 잃고 넘어지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앞 사람에게 무릎을 꿇을 수도 있었다. 그 외에도 책 보기도 힘들고 화장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다. 특히 최악은 사람이 엄청 많을 때다. 서서 가는 게 아니라 끼인 상태에서 출근하다 보면 그날의 쓸 에너지를 이미 깎고 시작한 느낌이 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뿐만 아니라 모두 앉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문제는 모두 앉는 걸 좋아하는데 자리는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앉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나는 이런 상황 때문에 생기는 긴장감이 싫다. 줄 서기부터 시작되는 눈치싸움. 열차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자리 선점을 위해 최대한 밀착하는 모습부터 문이 열린 후 앉기 위해 달려가는 모습까지. 이 상황이 좀 괴롭다. 특히 제일 괴로운 건, 괴롭다기보다 화가 나는 건 나보다 늦게 탄 사람이 나보다 먼저 앉는 것이다. 그 밖에 자리 때문에 발생하는 비합리적인 상황이 나를 힘들게 한다. 지금도 서는 것보다 앉는 게 좋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버티기 위해 서서 가더라도 불행해지지 않는 법을 생각해보았다.
많은 현대인이 온종일 앉은 자세로 몸을 웅크린 채 살아간다. 잠시 편할 수 있지만, 어깨와 허리가 점점 굽게 되면서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버스에서 서서 가는 것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체형 교정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러면 서서 가는 날에도 앉아 있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서 있을 땐 앉은 상태보다 비교적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이 점을 활용하여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과하지 않은 범위에서 몸을 풀어주면 좋다.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내 몸에 집중하며 움직여준다. 손잡이를 잡고 눈을 감은 채 머리와 어깨, 골반, 발목 등을 천천히 움직여준다. 그러다보면 부족했던 에너지가 다시 생겨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이렇게 몸을 풀어주면 앉아 있는 사람보다 훨씬 몸을 개운하게 만들 수 있다.
만약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기에 사람이 너무 많을 수도 있다. 서기의 장점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일명 지옥철. 가끔 겪긴 했지만 정말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여러 사람이 열차에 타기 위해 필사적으로 밀고 들어오기 때문에 내 몸은 이미 엄청난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된다. 가끔은 사람들에 너무 꽉 끼어 숨조차 쉬기 힘들 때가 있다. 이건 정말 피하는 게 답이지만 어쩔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모두 그렇겠지만 나 역시 최대한 각성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 이유는 보통 몸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균형을 잡아주는 근육들이 굉장히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이때 할 수 있는 일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내 몸의 긴장을 조절하는 일이다. 내가 주로 하는 방법은 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적절하게 몸에 힘을 줘서 버티고 열차와 사람들의 움직임의 맞춰 조금씩 발의 위치를 바꿔주는 일이다. 또 지나치게 몸이 긴장되지 않도록 몸을 관찰한다. 마치 성난 파도에서 서핑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조금 어려운 기술이 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몸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 꽤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모든 건 마음 먹기 나름이라고 내가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상황 안에서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고 적용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그 힘을 기르는 것은 어느 한순간이 아닌 차츰차츰 길러진다. 앉는 상황에서든 서는 상황에서든 나에 대해 발견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