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자리

by 천천

'자리'라는 건 일종의 공간 같은 건데 그 공간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다. 회사에서 내 '자리'는 회사에서 준 책상과 의자, 컴퓨터가 놓여있는 공간이고 나는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지하철에서의 내 '자리'는 회사의 자리처럼 내 물건은 없지만 내가 현재 서거나 앉아서 머무는 공간이다. 그런 자리의 생김새와 상황에 따라 자리를 대하는 내 마음도 다양하게 움직인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대해 적어보며 다양한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바를 나눠보고자 한다.



버스에 앉을 때 좋아하는 자리


ant-rozetsky-lr9vo8mNvrc-unsplash.jpg


버스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는 맨 앞자리다. 맨 앞자리도 기사님 뒤쪽과 문이 열리는 쪽이 있는데, 나는 문이 열리는 쪽을 좋아한다. 시야가 트여있어 멀미할 걱정도 없고 정류장마다 타는 사람들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는 곳이다. 버스는 가끔 급정지하기도 하고 방향을 꺾기도 하는데, 겁이 많은 나에게 이런 상황을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자리라 제일 선호하는 듯하다



지하철에 앉을 때 좋아하는 자리


adam-chang-ntBPyGZCMWg-unsplash.jpg


지하철에서 제일 좋아하는 자리는 맨 끝자리이다. 이곳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노리는 곳이다. 아무도 없을 때 가장 먼저 채워지는 곳이며 혹시 자리가 나더라도 바로바로 메꿔지는 곳이다. 맨 끝자리는 양쪽이 아닌 한쪽에만 사람들이 앉을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내 공간이 확보되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같이 있으면서도 본능적으로 혼자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싶은가 보다.



강의 들을 때 선호하는 자리


green-chameleon-s9CC2SKySJM-unsplash.jpg


강의실 내에서는 버스나 지하철처럼 제일 좋아하는 자리는 없다. 피하는 곳만 있을 뿐이다. 바로 맨 앞자리. 맨 앞자리는 선생님과 바로바로 소통할 수 있는 자리고 강의에 가장 몰입할 수 있는 자리라고 흔히 여기는데, 나에겐 아니다. 뒤에 사람들이 있다는 게 제일 꺼림직한 이유다. 그래서 보통 맨 뒤나 맨 뒤에서 한두 줄 앞에 앉는다. 이러면 조금 산만해질 수 있지만, 그래도 선생님과 수강생 모두를 볼 수 있어 더 안정감이 들곤 한다.



술자리에서 말을 제일 잘하는 자리


kazuend-NmvMhov1sYc-unsplash.jpg


밥이나 술을 먹으러 갔을 때 자리 안내사가 있어 사람들이 앉을 자리를 배정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다면 불평도 눈치싸움도 없을 텐데. 끝자리는 너무 소외돼서 싫고 메인은 주목돼서 싫고 옆자리에 안 친한 사람 있으면 어색해서 싫고 친한 사람 있으면 다른 사람이랑 어울리지 못해서 싫고.. 생각해보니 자리 배치는 참 어려운 일이다. 이 난관을 지나 자리에 앉다 보면 자리에 따라 내 역할이 많이 달라지곤 한다. 끝자리에 앉으면 조용히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다가 질문에 대답 정도만 하게 된다. 목소리를 키워 저 중앙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나의 목소리를 전달하려고 하진 않는다. 중앙 자리는 혼란스러운 자리다. 양쪽에 사람들이 있어 둘 다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에 호응해 주고 말을 이어가는 걸 잘하는 나는 중앙과 끝자리 사이의 공간이 좋다. 이곳에서 사람들의 말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고 끝자리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게 말을 계속 이어간다. 자연스레 이 자리에서 말이 제일 많아진다.


우리가 사는 곳을 보금자리라고 한다. 잠을 자고 꿈을 꾸는 곳은 꿈자리라고도 한다. 이렇듯 우리에게 '자리'가 가진 의미는 다양하며 일상 중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내가 어떤 자리를 좋아하고 어떤 자리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한번 살펴보면 어떨까. 이 작업이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반복된 일상에 새 활력을 불어넣을지도 모르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는 것보다 앉는 게 좋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