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이던 비합리적이던 겪어가는 고통
사람이 하는 매우 큰 착각 중 하나는 "힘들다"라는 감각이 "자신이 무언가 하고 있다"라는 생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힘들거나 피곤하다는 감각을 평생 동반자로 삼아 살아간다. 아무리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환경이 주어진들 인간은 그 속에서 늘 새로운 결핍을 찾아내고 그 결핍을 메우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목마르며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늘 물을 찾아 나서야 하는 존재이다. 자신의 상황이 불만족스럽거나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되면 인간은 갈증을 느끼고 그 갈증은 곧 “힘들다”는 감각으로 이어진다. 힘든 것은 정신적으로 인간을 피로하게 만들며 그 정신적 피로는 육체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육체적 피로 또한 느끼게 되는데 여기서 느껴지는 복합적 피로도는 힘든 상태를 지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무언가 노동력을 부어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사실 “힘들다”라는 감각과 실제로 누군가가 상황의 개선과 진전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행위는 별개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 힘든 것은 누구나 힘들 수 있다. 돈을 많이 벌던 적게 벌던, 열심히 일하던 일하지 않던. 힘든 것은 인간이 필연적으로 찾아가는 현재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의 부재를 통해 느끼는 갈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그 힘듦을 격발시키는 요소는 매우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 대학 입시를 앞둔 수험생을 예로 들어 보자. 수험생활을 하는 그 기간에서 여러가지 사소한 만족감이나 불평은 없을 수 있지만 어느 누가 그 기간을 ‘행복’이라는 단어로 정의하여 경험하거나 또는 간직하고 있을까. 모두가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또는 그 상황을 돌파하고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낸 것이 아님에도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 시기는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위 수험생의 예시의 연장선에서 미루어 보았을 때 힘들어 하는 사람을 크게 두 가지의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으나 그 공통분모로는 현재 처해있는 혹은 미래에 기대하는 상황에 대한 압박과 불확실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한 공통요소 하에 행동 상의 차이를 보이는 집단을 나누자면 상황의 압박과 불확실성을 상쇄하고자 분투하지만 그 상쇄에 들어가는 노력의 고통 때문에 물리적 고통이 추가되는 부류와 상황돌파에 대한 기대와 노력을 투입하지 않아 불확실성을 전혀 해소하지 않기 때문에 물리적 압박감은 최소화 시키지만 심리적 압박감을 배로 받는 부류로 나뉠 수 있다. 고통이란 것이 근본적으로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라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개인사의 차이를 감안하고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고통의 양을 놓고 판단해보자면 두 집단의 고통 총량은 대동소이한 양상을 띄울 것이다.
즉, 압박적인 상황과 불확실성에 의해 불안한 상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그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은 결국에는 본인이 그 순간 느끼는 고통적 측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맞서 싸우고 고군분투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고통의 총량을 줄여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해결가능(또는 필요)한 요소들을 과제화 시켜 수행해 나가다보면 스스로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이 생각은 우리의 뇌와 사고가 행동을 선택해야하는 기로를 줄여주어 본능과 이에 대한 극복 사이에서 오는 딜레마를 줄여주게 된다. 더 나아가, 실제로 과제 수행을 통해 성과를 얻다 보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자체가 감소하는데 이를 통해 심리적 스트레스는 오히려 감소하게 될 것이다.
똑같이 힘들고 극복이 필요한 상황에서 누구는 욕을 하며 때려치우고 도망가고 회피하고 일시적 쾌락을 추구하여 그 상황만을 모면하려고 하며, 누구는 욕을 하며 그 자리에 앉아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하고자 한다. 두 가지 선택에서의 고통의 총량이 대동소이 하다면 굳이 전자의 행동을 선택할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힘들어 하는 것보단 무언가를 해 내가며 힘들어 하는 것이 차라리 합리적이고 현명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