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에게 반하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가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긴 생머리에 짙지 않은 화장을 하고 과하지 않은 옷을 입었다. 자연스러운 매력이 잘 어울렸다. 외국에서 오랜 생활을 했고, 전공을 살려 제약회사의 연구원이 되었다고 한다. 여자들이 담배를 피우면 안 예뻐 보인다는 그녀는 엄격한 부모님 아래서 부족함 없이,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삶을 살았다.
서른의 문턱을 넘어 이제는 좀 진지한 관계를 전제로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2년쯤이 지났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녀에게 반하지 않았다.
'낭만적인 만남'을 우리 삶의 이상으로 바란다고 했을 때, 지금의 나는 낭만적인 무언가를 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3년도 더 전에 헤어진 지난 여자 친구와의 끈을 살리는 게 차라리 낭만이라면 더 가깝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지난 2주의 일상을 나누고 오늘 점심을 무엇으로 어떻게 먹었는지까지 복기하고 난 후 계속해서 적절한 주제들을 찾아 나갔다. 최근 한창인 월드컵을 표현하고 어떤 기분으로 누구와 함께 했는지도 설명했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평소에 경기장을 가본 적은 있는지, 혹은 퇴근 후에 하는 운동들은 있는지를 물었고, 나와 그녀는 성실히 답변하려고 애썼다. 속도를 맞춘 맥주를 다 마셔갈 때쯤이면 미리 알람벨을 눌러 상대가 메뉴를 고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말을 편하게 놓았지만 느낌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매력이 덜해지는 것 같았다. 호칭이 가지던 신비감마저 없어지고 나니, 장마에 이 빗속을 뚫고 달려온 내 노력이 가상하게 느껴졌다.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오늘은 두 번째 만남이었다. 그리고 이 만남이 성사될 수 있도록 여러 억지스러운 노력들도 동원되었다. 우리가 첫눈에 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긴 장문의 문자메시지도 남겨야 했고, 생각보다 덥지 않은 날 더운데 한잔 하시라며 커피 쿠폰을 보내기도 했다. 오지 않거나 늦는 답장에도 그러려니, 난 이 사람에게 지금 빠져버렸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과 갈망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언제나 나는 네 편이야 라는 마음가짐으로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이 되어 쿨하게 답장을 보냈다. 다만, 이는 상대를 위함이기보다는 온전히 나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함이 컸기에 나는 이제 더 이상의 미련이 없는 것이리라.
그런 점에서 웬만한 회사 면접보다 긴 두 번의 네 시간짜리 일대일 면접이 마냥 적은 시간으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차라리 회사 면접이라면, 한쪽은 이미 충분히 사랑에 빠져 구애를 하는데에 총력을 기울이기라도 하니, 다른 한쪽만이 철저히 평가의 목적을 두고 있겠으나, 현재의 나와 그녀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이 면접이 성공적으로 성사될 가능성은 크지 않았음은 진작에 예견된 것일지 모른다.
나와 너는 충분히 서로에게 시간을 들였고, 우리는 반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반하지 않을 가능성을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더 크게 두었다. 우리의 성실한 면접은 그렇게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