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distance from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yner May 14. 2019

마음껏 아무의 무엇이 되어


눈 앞에 아른거리는 형상들에 허우적 대본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들에게 나는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또 갈 거지?'


태초에 우리의 길은 달랐던 것처럼

그래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했다. 

혹시라는 적은 가능성에 기댄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고

대가라면 달게 받아야 하리라. 내가 뭐라고, 섭리를 거스르려 하나.


이쯤 되면 무엇이 당위고 존재인지 헷갈리게 된다. 

어쩌면 모든 건 내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불길함은

이내 곧 서늘한 낯섦으로 다가온다. 나는 하릴없이 팔짱을 끼고 어깨를 으쓱여본다.


'아마도'

아마도

천진난만한 내 기대는 역시 이번에도 틀렸을 것임에

나는 다시 작은 모양새로 움츠러든다. 

만사가 이렇다. 

온 세상이 나를 예민하고 투정 많은 어린아이처럼 만드는 것 투성이다. 


익숙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또 떠난다는 그 말이, 그 눈빛이, 그 미안함이 너무 느껴지는 바람에

나는 또 화를 낼 수가 없게 되고 만다.



익숙한

이별만이 우리의 앞에 놓여있다는 걸 너는 일치감치 알아차렸는지 모른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우리의 근처에서 서성이며, 시간을 때우며

둘 중 하나가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나는 다만 조금 늦었을 뿐

네가 다만 조금 빨랐을 뿐


그것은 너의 탓도

아니 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음을,

서로 그렇게 하기로, 시작부터 약속했던 것임에

쉬이 입술을 떼지 못한다.


내가 좀 더 어리숙했던 때에는

그 '다소 빠름'이 미웠다. 


사실 그렇게 이른 것도, 

아니 실제로는 둘 다 늦은 지 오래되어서 

시효가 지났음에도,

차마 그 지연을 알아차릴 

나는 그런 마음조차 없었는지 모른다.


끝끝내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려고 했고

기꺼이  

상처를 받는 쪽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 그뿐이다. 


다만 그것이,

우리의 순간이었고, 마지막이었고, 

흐르는 바람에 날리는 기억이라는 부스러기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아쉬움을 이야기하고 

눈물과 사연 그리고 어설픈 자기변명 같은 것들로

그때의 공간과 시간을 이야기했다.


가급적 극적이고 운명적인 방식들로,

우리의 과거는 여전히 현재로 남아서

미래의 불안함을 마음껏 조장하고 있다. 


또 떠나간다


또 흘러간다


떠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려니

그래 그렇게 또 

떠나고

흘러서 

마음껏 아무의 무엇이 되어 버려라


마음껏 아무의 무엇이 되어 버려라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서로에게 반하지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