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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yner Mar 09. 2019

그들의 거리

[우리가 녹는 온도 - 정이현]

그들은,   


801호와 802호, 두 개의 교육장 벽면을 터서 하나의 커다란 강당처럼 만들어 놓은 이곳에는, 100명이 조금 넘는, 이제 입사 한지 막 석 달도 채 되지 않은 신입 사원들이 모여서 교육을 듣고 있었다. 사회 초년생이라기엔 아직 대학생 티를 다 벗지 못한 앳된 얼굴도 있고, 이미 석사에 박사 과정까지 마치고 와서는, 조금은 늦은 나이에 원숙함이 묻어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는,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은 요즘 같은 시대에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를 얻었다는, 일종의 사명감과 자신감, 설렘이 담긴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교육장 벽면에 걸린 ‘패기 있는 인재’는, 그 누구보다 지금의 이들의 눈빛을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 이리라. 



처음 맞이해보는 이 어색하고 긴장되는 생활들을, 그들은 퇴근 후의 단합으로 이겨내려는 듯했다. 교육에서 같이 묶인 조원들끼리 치맥 번개를 하고 어떤 이들은 소주를 가득히 따라 마시며 동료로서의 든든함을 다졌다. 처음 받아보는 월급을 모아 함께 쇼핑을 하거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SNS를 업데이트하였고, 주말을 이용해 곤지암 근처의 콘도로 2박 3일 야유회를 나갔다. 함께 차를 빌리고, 대형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저녁에 함께 먹을 음식과 술을 카트에 담았다. 술에는 역시 과일이라며 복숭아를 가져오는 이도 있었다. 아직 저녁이 되려면 한참 멀었지만, 일찌감치 술판은 시작되고, 고기가 구워졌다. 누구와 누구는 눈이 맞아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손을 잡고 있었고, 누군가는 서울에 놔두고 온 여자 친구와 남자 친구에게 혹은 가족들에게 반쯤은 꼬부러진 발음으로 안부 전화를 했다. 모두들 각자의 방식으로 젊음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성인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어느덧 7년이 흘렀다. 

처음 만났을 때 기껏해야 20대 중 후반이던 그들은 이제 서른넷, 서른다섯이 되었다. 대부분 대리였지만, 누구는 부지런히 실적을 올려 과장이 되었다. 네 명 중 세 명은 결혼을 했고 그중에 두 명은 아이를 낳았다. 어떤 이들은 휴직을 했고 어떤 이들은 이직을 했다. 출산 휴직에서 얼마 전 돌아온 이는 직장인으로서의 삶 대신 그 자리를 채운 새로운 가족과 육아에 대해, 설을 앞두고 다녀와야 하는 친정과 시댁의 상황에 대해, 이미 몇 번은 반복했던 사람처럼 익숙하게 털어놓았다. 더 이상 조바심이나 긴장감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제법 포근하고 나른한 그런 눈빛과 말투로, ‘이제 나이 다 먹었어’를 하루에 두세 번씩 습관적으로 내뱉었다. 


이제 퇴근 후 서로 뭉치는 일이 줄어들었다. 각자의 팀에서, 혹은 그동안 만들어나간 각자만의 관계들 속에 자신을 좀 더 의지하였고, 채 70명도 남지 않은 동기들 사이에서 송년회니 신년회니 하는 것들은, 그 모임을 주도하던 이들이 퇴사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져 갔다. 다섯 명 이상이 함께 모여 무언가를 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7년 전 더운 여름날, 서로의 손을 잡아주며 지리산 둘레길을 종주하던 그 열기들이 있던 자리는, 이제 대신 전달을 부탁한다는 경조사 봉투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제는 서로에게 서로가 예전만큼 크지 않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지만, 그 누구도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우리는 언제인가부터 서로가 서로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만난 것이, 단순히 우연이 맞아떨어져서가 아니라, 서로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었더라도 절대적이고 필연적으로 만났을 것이라는 ‘신화’를 순진하게 믿고 있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그러나 동시에, 모두가 함께 들고 있는 ‘관계의 중요성’이라든가 ‘만남의 무게’, ‘서로의 가치’ 등으로 표현 가능했던 이 ‘짐’의 무게가, 이제는 사실 아무런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빈 껍데기가 된 지 오래라는 사실을 굳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 또한 없다. 눈치 없는 누군가가 실수로라도(혹은 의도적으로) “야, 이거 하나도 안 무거운데? 다들 뭘 들고 있는 거야?”하고 질문을 던진다면, 누군가 순발력 있게 대답한다. “야 이건 원래 들고 있는 무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세가 중요한 거야. 아니면 이걸 들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거라고. 요즘 때가 어느 땐데 너는.”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쉴지 모르겠다. 



나의 이야기와 그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각자의 서사와 플롯을 가지고 동일한 시간 위에 흘러간다. 때로는 서로를 간섭하거나 충돌하기도 하고 뒤엉켜 행복이나 즐거움, 아쉬움이나 슬픔 기타 등등의 감정으로 대변되는 사건 사고의 배경이 된다. 물론,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그 이후로는 단 한 번의 마주침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되어, 그래서 결국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관계의 빈도와 깊이, 속도와 멈춤. 이 불안한 부정교합과 비극에 대하여 생각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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