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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yner Feb 05. 2019

종교로서의 문학

[제9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 박민정, 임성순, 임현 외]


1. JYP의 마음으로
 
내가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죄책감 때문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당시 김연수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서 받은 충격으로, 그간 소설 문학을 가볍게 대해왔던 나의 거만한 태도를 깊이 반성하고 새로이 출발하리라는 다짐에서였다. 나아가 '신춘문예로 대변되는 기존 문학계의 폐쇄적 인재 발굴 시스템의 때를 그나마 덜 탄',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보자는 취지에 공감했던 독서모임 분위기에 힘입어 나는 이 책을 읽어보자고 제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을 추천하는 부담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책을 몇 장 넘기기도 전, 이 걱정이 기우였다는 확신과 함께, 나는 작품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평가를 하러 나와서는 채점을 하다 말고 출연자의 기교와 리듬감에 흥에 겨워 춤추는 JYP의 마음으로.


 2. 문학은 무엇인가. - [그들의 이해관계]

 스릴러나 재난 영화를 볼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왜 영화는 주연이나 조연급에 해당하는 인물의 고통과 희생을, 그렇지 않은 인물의 그것보다 더 크고 중요하게 그려내는 걸까? 똑같은 위험과 긴급의 상황에서, 그걸 당해도 되는 쪽은 누구이며, 그래서는 안 되는 쪽은 누구인가. 인간은 공감의 동물이라, 본인이 더 많은 공감대를 갖고 있는, 소위 ‘스토리’를 가진 주인공에게 더 마음이 가기 마련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안전과 안녕이 더 가치 있는 무엇으로 느끼는 것일지 모른다. 임현의 '그들의 이해관계'를 읽는 내내, 우리가 당연시 여겨왔던, 그러나 분명히 불편한 이 지점에 대해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어떻게 왜 하필 해주였어야 했느냐고 절규하는 ‘나’의 면전에 대고 해주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속이 시원했겠느냐고 비꼴 수 있겠는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삶은 늘, 주어진 R&C를 묵로 제한된 기회를 쟁취하는 생존게임이었다는 점에서, 경쟁은 언제나 인간 존재와 함께 해왔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우리 존재의 비극은 시작된다. 이를 어떻게 인문학적이고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두고 우리의 도덕과 철학은 수많은 가설과 증명을 시도해왔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 어떤 것도 인간을 이 '숙명'으로부터 구출해내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수많은 시도들은 이 '고통'에 대한 근원적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최대한 유연하고 덜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진통제나 윤활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리와 생물학, 수학의 접근방식이 자연에 얼마나 많은 리소
스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활용하는 방법에 집중하는 동안, 경제와 경영학은 제한된 리소스를 어떻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극대화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인문, 사회학은 얻어낸 그 열매를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사회의 ‘정의’에 합당한가를 다룬다.


그야말로 수십억 개의 다양한 이해관계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이 세계에서 무엇이 더 나은 답안인지를 제안하는 과정에 우리는 모두 동참하고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활동들을 작동하도록 만드는 동기 또한 바로 리소스 그 자체라는 점에서, 우리는 순환하는 고리 안에 갇힌 햄스터와 같이 굴레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는지 모른다.


문학(예술)이 등장하는 지점이 바로 이 곳이다. 수레바퀴 속에 갇힌 우리들을, 이럴 수밖에 없는 우리 존재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붕대를 감고 멍든 곳을 다독거린다. 우리에게 그 외의 명쾌한 답이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문학은 가히 종교적이다.



3. 감상록


다음은 이번 'Bible'에서 인상 깊었던 몇몇 구절들에 대한 감상이다.


[세실, 주희]

정교한 장치들을 플롯 속에 효과적으로 담아내, 탐나는 균형감각과 성실함이 느껴진다. 작가는 이 작품을 한 달 여 만에 써냈다고 고백했는데, 이는 굉장한 집중력과 치밀함의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즉흥적인 글쓰기를 즐겨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과연 이렇게 공을 들여 준비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애정과 치밀함은 여전히 소설을 3분 카레 마냥 생각하려는 나에게 회초리로 다가온다. 소설은 충분한 대가를 요구한다.
 


[회랑을 배회하는 양 떼와 그 포식자들]

미술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리고 자본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나에게 여러 의미로 다가온 작품이다. 인물과 상황의 소재가 기본적으로 참신했던 것은 아니나, 이에 지쳐 늘어지지 않도록 빠르게 시계태엽을 감는 덕분에 빠른 호흡을 유지하는 작품이 되었다. 나는 이런 작품이 좋다. 어느 정도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했을 때, 한번 더 당겨 보는 사고의 흐름. 과감한 가설과 그에 상응하는 즐거운 답변. 부디 창작 예술을 주제로 써보리라.



[그들의 이해관계]

서술기법에 관한 한, 7개의 작품들 중 가장 탁월한, 아니 요 근래 본 ‘글솜씨’ 중 가장 탁월함을 느끼게 했던 작품이다. 글이란 참 묘한 게, 글자의 나열일 뿐이나, 멜로디를 타고 악보를 그리듯 술술 읽히는 운율을 가졌다. 정교하고 예민한 감각에 기반해, 독자를 최우선으로 배려하는, 흡사 ‘집사’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어렵게 쓴 글은 보는 사람에게 고통과 희생을 요구한다. 불친절한 글쓰기는 때로 작가의 의도를 담아내는 데는 성공할지는 몰라도, 내가 선호하는, 지향하는 글쓰기는 아니다. 반복된 훈련으로 얻은 글 솜씨와 더불어 작가의 농축된 사고가 낳은 결과물이다.



[더 인간적인 말]

정영수 작가 역시 글을 써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관념적 대화가 갖는 모습의 구석구석을 담담하되 정교하게 서술해나간다. 그리고 예술이 늘 답하려고 시도하지만 쉽지 않은 지점, 구체적인 삶의 문제 상황에 닥쳤을 때, 단지 관념적인 옳고 그름을 떠나, 당장 나라면? 이게 남의 일이나, 다른 나라 얘기가 아니라, 당장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물음이라면? 그 전과는 달리 쉽게만 말하기 어려운 지점들에 대하여 비판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재밌는 상황(아직 사망하지 않은 상속자와의 대면)에 대한 착안에서 시작되었지만, 메시지를 던지는 방식이 굉장히 세련되고 은근하다는데서 매력적이다.



[한밤의 손님들]

앞서 언급한 '불친절한 글쓰기'의 대표적 사례이다. 흔히 '이상'으로 대변되는 '현대 예술'의 모호함과 불분명성, 작가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서술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잘 읽히는' 글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사실 이런 글은 솔직히 말해 '짜증'이 난다. 환각 증세에 빠진 듯한, 영화로 치자면 주인공의 상상에 따라 자유자재로 장면과 무대가 바뀌는 판타지.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이러한 작업 기법이 예술가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최고의 권한이자 권리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내가 느끼는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감정은 예술작품과 회사에서의 전략 기획 보고서를 모두 동일한 '글'의 형태로 받아들이므로 인해 발생하는 직업병 환자로서의 증세라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이따위로 보고서를 쓰다니? 가 나오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문학이다. 회사의 '전략' 보고서가 절대 할 수 없는, 결코 해서도 안 되는 문학이 그 존재적 가치를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작가가) 자유로운 글쓰기를 찬양한다. 내가 건조하고 가시 돋친 선인장이 되지 않기 위해, 예술을 영양제처럼 의무적으로 곁에 두는 이유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처음으로 게이 문학을 읽었다. 아니 게이 영화, 음악, 미술을 통틀어 게이의 영역은 내가 처음 마주한 경험이다. 부끄럽다. 나는 표면적으로는 다양한 성을 인정하고,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그를 위한 어떤 적극적인 액션도 취한 적도 없다. 그냥 '관념적으로만' 옹호해왔던 것은 아닐까? 마땅히 그래야 했음에도 적절히 기대되는 일종의 의무적 행위들을 하지 않은 것을 벌한다는 '사마리아인 법'에 따르면 나는 유죄 이리라. 작가 덕분에 너무 재밌고 유쾌한 방식으로 소수 문학을 접했다. 이게 바로 작가, 예술가들이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이다. (그렇다고 의무나 책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행동을 변화시키는 생각의 힘. 펜으로써 사람을 교화시키는 힘. 예술가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회를 읽어 나가는, 나아가 사회봉사적 역할까지 해주고 있는 멋진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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