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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yner Aug 05. 2019

카메라를 의식한 작가의 글은 좋을 수가 없으니

브런치가 글쓰기를 방해한다면


글쓰기가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작의 마음이 짐덩어리여서는 발을 떼기 어렵다. 마음껏 나아갈 수도 쉬이 멈출 수도, 원하는 때에 오른쪽으로 돌아버릴 수도 없다. 내 안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지 않고서는 그저 그런 스팸 문학이 될 수밖에 없다. 스팸 시가 되고 스팸 수필이 되고 그러다 결국에는 스팸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무언가를 지껄이려고 할때 그 연습장이 종이가 너무 하얗고 부드럽다면 글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 종이는 과감히 찢어버려야 글이 살 수 있다. 어플이 깔끔해서, 이 글씨체와 UI가 너무 매끈해서 도무지 글 자체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은, 곧 그를 넘어서는 내 안의 소리가 없다는 방증이다. 그렇게까지 내야만 하는 소리가 없다는 거다. 그것도 억울하다면 이 'SNS형 글쓰기 플랫폼'이 잘못 설계됐다는 얘기니, 적어도 나에게는 독이든 사과이니 과감히 발로 짓이겨 버려야 할 것이다. 부디 브런치가 나에게 쓰레기 같은 짐이 아니기를 바란다.

 


보고서를 쓰던 습관과 관성들 때문에, 늘려 쓰는 문체가 자꾸만 저어되는 느낌이다. 어쩌면 창작의 미덕은, 딱히 할 말 없으면 쓰지 않고 과감히 펜을 내려놓는, 보고서가 추구하는 그런 효율성의 가치에 근본적으로 반하는 일일지 모른다. 할 말이 없어도 쓴다. 쓰다 보면 생긴다. 생각이 생각을 낳는다.


영감을 남발하는 일이 예술의 에너지와 의지를 더 흐리게 만들 것을 염려하기도 했다. 

무분별한 다작이 곧 그 깊이를 얕게 만들 것을 염려하고, 호흡을 모으는 일에 헛바람이 끼어들 것을 걱정했다. 그러나 유일한 참(true)은, 이러한 가정들이 몸에 밴 게으름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데에 유용하다는 명제 뿐이었다. 글을 쓰지 않는 이유로 희소성을 언급하기 위해, 필요한 시도의 하한(下限)은 최소 이승엽의 사인 횟수는 돼야 할 것이다. 물론 이마저도 공감을 사는데에는 실패하겠지만. 


안 쓰면 녹이 슬고 고인 물은 썩는다.

자꾸만 써내서 배설욕이 없어질 만큼, 구역질을 수십 번 수백 번 해내고 난 다음, 헛구역질에 물린 사람이 될지언정, 일단은 내뱉어야 한다. 여기저기 휘갈겨대고 분량을 뽑아내야 한다. 스킬은 풍요로워지고 소재는 다양성을 가질 것이다. 너무 남발 해대서, 쏟아내 버려서 얼마 못가 바닥나버릴 예술혼이라면, 애초에 다 털어내도 그 양이 얼마 되지 않는 비루한 열정이었을 것임에.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기를, 성실하고 꾸준한 마른하늘 햇볕과 같기를. 어쩌다 그은 선 하나가 비싼 값에 팔리는 그런 불성실한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만이 될 수 있다.


내가 작정하고 아무리 써재낀다 한들, 그 종이는 겨우 몇 권의 소설책에 불과할 뿐이고, 그 파일은 1MB 조차 넘기 어려울 것이다.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고 홈런왕을 꿈꿨는지 모른다. 몇 번 차보지 않은 발에서 챔스 결승골이 나올 리 만무하다. 흔히 말하듯, 이런 스토리는 영화로 만들어도 욕먹는다. 신물이 나는 작가가 되어야지. 그래 봤자 나는 게을러서 남들의 반의 반의 반의 반도 쓰지 않는 그런 작가가 되겠지만.


최소한 손가락 근육은 단단해지겠지. 기초체력을 길러야 좋은 글을 길게 쓸 수 있단다. 지금으로서는 단편 수필 몇 편 혹은 시 몇 개, 노래 가사 두어 개를 지어내고는 숨을 가빠할지 모른다. 고등학교 힙합 동아리 시절 무슨 랩이라도 써낼 수 있다던 그 노력 없던 의욕이, 수준 낮은 배설물들을 무대 위에까지 꾸역꾸역 올렸다. 좋은 노래는 잊히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 날 2절 가사를 통째로 잊어버린 건 우연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어설픈 작가 코스프레 집어치우고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펜을 쥐자. 스페이스 바를 누르고 엔터 키를 누르자. 주절대는 그 겹겹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통통한 진주가 익어갈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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