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학교 : 일 - 로먼 크르즈나릭]
1. 오래되지 않은 자유
어쩌면 주어진 것보다도 훨씬 많은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은 중학교 시절 사회 수업에서 배운 매슬로우의 욕구 7단계 일수도 있고, 전쟁 직후 새마을 운동을 거쳐 이제 막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후,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다음 세대에서는 대신 이뤄주리라는 기대 가득한 표정을 한 우리 부모님의 마음일 수도 있고, 그리 농익지 않은 교수법임에도 불구하고 내 제자들을 위해서는 혹시나 도움이 되리라 희망적이고 이상적인 목표를 주고 싶었던 우리 선생님과 교수님, 동네 아는 형과 누나로 대변되는 인생 선배들의 가슴 어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들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유행처럼 흥행했던 위인전 시리즈가 교훈을 주어야한다는 태생적인 장르적 한계에 갇혀서 혹은 현실을 적절하게 담는데에 충분히 능숙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그렇게 나와 내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천직이라는 유니콘을 찾아 떠나야 했고, 20년 정도가 지난 지금 대부분 그에 실패했다. 우리가 꾼 꿈은 무엇이었을까? 아름다운 신화가 남긴 아름답지 못한 현실의 단면이자,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행복에, 천직에 다가가는 것을 몇 걸음은 후퇴하도록 만든 주범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마저도 감히 상상하고 꿈꾸지 못했던 시절의 상황들을 떠올리면, 마냥 이 모든 것들을 원망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피와 땀으로 쟁취한 민주주의의 그것와 같이, 원하는 일을 하며 행복을 꿈꿀 수 있는 이 자유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랬듯, ‘요즘 애들’은 받은 것보다 받지 못한 것에 항상 더 민감했고, 본인의 노력보다는 완전하지 않은 여건들에 탓을 돌리기 바빴고, 앞으로 펼쳐질 내일의 하루보다 지금까지의 과거에 더 집착하기 바빴다. 이제 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2. 감사를 말하는 방법
기본적인 의무와 주어진 미션들을 멋지게 해치워 나가면서, 동시에 내일의 꿈을 그릴 거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보다는 앞으로 가지게 될 것에 대한 설렘과 두근거림을 꿈꿀 거다. 나태하고 게으른 컴플레이너가 되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나이가 되어, ‘그래서 내가 결국에는 그걸 해내고야 말았다’를 이야기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누군가가 힘들게 버티고 견딘, 힘들고 지난했던 수억의 시간들이 모여 그나마 나는 여기 있다. 이 영광의 행복과 감사의 기회들을 이대로 흩날려 보내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오랜 바람이고 누군가가 이루지 못한 꿈이었을, 지금 이 순간, 아니 앞으로도 오랫동안 여전히 누군가는 믿고 기다리는 희망일, 우리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서는 안된다.
그들의 꿈이 고작 칼퇴하는 직장인이 되어 웃기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시원한 맥주캔을 따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을거라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게을러도, 소파에 누워서 '그야 물론 감사하지' 하고 중얼거리는 멋대가리 없는, 실패한 희망이 되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