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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yner Aug 05. 2019

시기단상(猜忌短想)

[젊은 작가상 수상집 10주년 특별판 - 편혜영, 김애란, 손보미 외]


1.

기껏해야 스쳐 가는 인상이었다.

어느 누구도 그 당위성에 대해 강조하지 않았고, 그 무엇도 서른을 훌쩍 넘긴 나태함을 움직이게 만들 수 없었다. 그저 십 수년에 걸쳐 학습된,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no pain no gain의 논리가 백수에게 보낸, 쓰지 않는 메일함 속 쌓여가는 부작위 경고 메일에 불과했다. 본 듯 보지 않은 듯, 스친 듯 스치지 않은 듯 그런 오래되고 힘없는 신호였다.



2.
글을 쓴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나를 잘 나타내 준다며 으쓱하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나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남들은 귀찮거나 어색하거나 또는 낯설기까지 한 이 작업들이 나에게만은 특별한 기운이 있는 것처럼, 나만의 특별한 능력치처럼, 그러나 또한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노력 없는 능력처럼 비칠 것을 경계하며, 나도 이렇게 된 내 자신이 되기까지 쏟아야 했던 반복된 연습과 노력들을 가능한 무덤덤하고 성숙한 표정으로.

젊은 작가 수상집을 읽었다. 등단한 지 10년 내외의, 그나마 문학계에서 일반 독자들과의 거리가 덜한, 그래 봤자 프로필에는 이미 내로라하는 수상 내역들이 빼곡히 적혀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작가들이 주는 특유의 친근함은, 낯선 여행지에서 우리말을 쓰는 또래를 만난 듯한 공감각적 희망을 품기에 좋았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책을 펴기도 전부터 줄곧 나를 따라다녔는데, 이는 평소라면 적당히 지나쳤을 글의 제목을 주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작가가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메시지, 호기심과 임팩트를 전달하기 위해 고려했을, 어쩌면 당신의 필모그래피에 수없이 반복될 그 keyword로서의 고유명사. 첫 문장, 그리고 그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때의 고도화된 구조적 설계와 스킬, 의도된 뒤틀린 표현법들에 주목했다. 여기에는 분석을 통해 파악된 상대에 대한 의심과 합리적 추론에 근거한 폄하가 감탄이나 동경 못지않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정도 스킬이야 뭐. 이걸 노렸네. 이건 진짜 괜찮네. 좋네 기억해놔야지. 근데 이건 이렇게 쓰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네. 아쉽네. 굳이 이걸 넣었어야 할까. 이것도 전체적으로는 작품의 가치 측면에서 꼭 필요했던 걸까. 더 나은 것은 없었나. 나는 끊임없이 작가와 작품을 시기하며 내가 그보다 나을 수 있는 지점들에 대해 고민했으며, 신규 투자를 검토하는 보수적인 임원처럼 상대를 깎아내릴 수 있는 지점들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상대가 오랜 시간 준비해온 전략과 전술 그리고 그 누적된 감정의 찰나들에 대하여, 그 집념과 고집들에 대하여, 그 고상한 취향들에 대하여 나의 완전한 패배를 인정하다가도, 간혹 상대가 남겨놓은 불완전한 틈새를 찾아낸 후 내가 메꾼 모양새가 좀 더 그럴듯하다는 생각에까지 이를 때면, 예술이 허락한 은밀하고 기이한 변태적 감상의 전형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쨌거나, 글이 뒤지게 안 써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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