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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yner Aug 12. 2019

장르의 주제 편향도 흘러가는 유행일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어렸을 적 몇 안 되는 기억이 있다. 주로 외부로부터 습득한 주장들을 내 것인 양 체화하던 때라 당시로서는 대단한(?) 발견이었다. 내가 10살 즈음이었던 1996년, 당시는 댄스 그룹을 필두로 한국 가요계가 거대한 변화를 맞던 시긴데, 인상이 깊었던 점은 대다수의 노래들이 사랑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간혹 '쿵따리 샤바라'나 '트위스트 킹', '전사의 후예'나 '학원별곡' 같은 노래들도 있었지만, 이는 댄스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이거나, '왕따', '주입식 교육'이라는 10대 팬덤의 공감 이슈에 편승함과 더불어, 강렬한 보이그룹의 반항적이고 퇴폐적인 이미지를 위한 마케팅 측면이 컸다는 점에서 예외다. 그 외에는 딱히 떠오를만한 웬만한 노래는 사랑과 이별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게 없을 정도로, 천편일률적으로 울부짖거나 그로 인한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랑에 빠지기 전, 빠지고 난 후, 사랑이 끝난 후 또는 끝나기 전 누군가와의 다른 사랑. 여름에 하는 사랑 겨울에 하는 사랑 바다에서 하는 사랑 엘리베이터에서 하는 사랑까지. 나는 그 후로 한동안 노래방에 가면 습관적으로 사랑 이야기가 아닌 노래를 찾는 강박이 있었다.



 얼마 전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읽으면서도 어딘가 예전 그때의 어색함을 느꼈다. 젊은 작가들이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주제와 문제들은 이런 것들인걸까. 이 작품들을 선정한 중장년의 심사위원과 또 그 작품들 가운데 다시 수상작가가 뽑은 작품들이 이 일곱 작품이라면, 분명히 그 중간 어딘가를 관통하는 무엇의 코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화자는 각자가 처한 상황과 사연은 달라도, 빈부의 격차가 있거나 바쁘거나 한가하거나 다급하거나 게으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종의 하나의 아이덴티티가 아닐까 하는 정도의 예민함과 집중력, 현실감각과 눈치와 날카로움과 온화함 간에 유사성이 있었다. 이 주인공이 저 작품의 상황에 등장한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느낌. 말투나 취향의 차이는 있어도 근본 인성과 사고방식, 그 안에 내포한 가치관은 분명히 암묵적으로 공유되는 코드가 있달까. 사회생활에 정답은 없다지만, 분명히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들의 모양새를 들여다보면 분명히 공통적으로 풍기는 향기와 감각들이 있는 것처럼, 소위 '잘 나가는 캐릭터'들은 삶에 대한 태도,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유사한 회복 탄력성과 상황 대처 능력 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 편향성은 장르의 특질일까, 잠시 지나가는 유행일까.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이 공통적인 감각과 관점들로 새로운 작품을 쓰면 '그대들이 좋아하는' 취향을 엇비슷하게 맞출 수도 있다는 생각, 아니 창작한다는 사람이 자존심이 있지 그 특질들에 반하는 캐릭터와 어조로, 특질이든 유행이든 모르겠고, 그런 공식 같은 거 없이 승부하고 싶다는 오기, 곤조. 언제나 말은 쉽고 상상은 공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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